[日本 ‘100년 기업’을 가다]⑤류카쿠산

  • 입력 2007년 11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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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룩하면?” 일본인에게 이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온다. “류카쿠산(龍角散·한국명 용각산).” 진해거담제 류카쿠산의 제조업체 류카쿠산의 연 매출액은 40억 엔. 일본 최대 제약업체에 비하면 350분의 1에 불과한 규모다. 그러나 브랜드파워는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인 100명 중 97명이 류카쿠산을 안다. 200년 간 한 우물을 판 전통에서 나오는 힘이다.》

하지만 전통이 기업경영에 항상 도움만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기업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암세포’로 돌변한다.

도쿄(東京) 류카쿠산 본사에서 만난 후지이 류타(藤井隆太·48) 8대 사장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류카쿠산이 이런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위기일발

1996년 초 의료업계에는 류카쿠산이 공급하는 비타민제와 위장약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제조과정에서 과열로 일부 성분이 약간 변색(變色)한 것이 화근이었다.

건강에는 전혀 해가 없었지만 류카쿠산은 사실을 공개하고 관련 제품을 모두 회수했다.

당시 일본은 의약품 안전 문제로 시끄럽던 때여서 제품 회수 소동은 큰 위기로 이어졌다.

거래 거부가 줄을 잇고 판매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하지만 류카쿠산의 제품 회수 결정은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됐다. “류카쿠산은 양심적”이라는 평판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확산된 것.

류카쿠산의 진짜 위기는 다른 곳에 있었다.

이렇다할 신제품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주력 제품인 류카쿠산의 매출은 매년 하향곡선을 그렸다.

적자가 누적되고 빚이 늘어 갔지만 류카쿠산의 임직원들은 변화를 모색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개혁과 부활

입사 1년 만인 1995년 6월 최고경영자가 된 후지이 사장은 이런 류카쿠산의 무사안일주의에 과감한 개혁의 칼날을 들이댔다.

사내의 저항은 거셌다.

특히 1998년 신제품 발매 여부를 둘러싸고 기존 임원들은 “사업은 사장의 취미가 아니다”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약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건강이 나쁜 고령자들이 약을 쉽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연하(嚥下·삼켜서 넘긴다는 뜻)보조젤리’가 논란의 대상이었다.

양로원을 직접 방문해 고통 받는 고령자들의 모습을 직접 본 후지이 사장은 비록 시장성이 좀 떨어져도 제품을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기존 임원들은 사업성이 떨어지는 제품의 판매는 보류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과는 후지이 사장의 승리였다.

연하보조젤리는 약을 먹기 싫어하는 어린이용 의약품 등으로 용도가 확산되면서 판매한 지 4년 만에 1000만 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후지이 사장은 신제품 성공의 여세를 몰아 2004년 TV광고 캐치프레이즈를 ‘쿨룩하면 류카쿠산’에서 ‘목을 깨끗하게 류카쿠산’으로 전격 교체했다. 무려 40년 가까이 지속해 온 TV CF를 바꾸는 것은 모험이었지만, ‘사후 치료에서 예방’으로 소비자 수요가 변한 사실을 읽은 정확한 판단이었다.

CF 교체를 계기로 수십 년째 하향곡선을 그리던 류카쿠산의 판매 실적이 상승세로 반전했다.

○‘귀여운 아이는 여행을 시켜라’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경영권을 넘겨받은 후지이 사장이 ‘늙고 병들었던’ 류카쿠산을 ‘회춘(回春)’시킨 비결은 무엇일까.

후지이 사장은 “당시 류카쿠산은 망해 가는 중이었지만 내부에 있는 임직원들은 이를 느끼지 못했다”면서 “나는 밖에서 류카쿠산을 봤기 때문에 문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후지이 사장은 1994년 초 불치병 선고를 받은 부친이 처음으로 경영권 승계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류카쿠산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음악대를 졸업하고 잠시 음악교사 생활을 한 그는 고바야시제약과 미쓰비시화학 등에서 주로 ‘현장 영업맨’으로 뛰었다. 그의 부친은 ‘귀여운 아이는 여행을 시켜라’라는 일본 속담을 충실히 실천한 셈.

후지이 사장은 “기업이 오래됐다는 것은 지금까지 잘해 왔다는 뜻도 되기 때문에 전통이 있는 기업일수록 변화를 싫어하기 마련”이라면서 “하지만 환경이 변하는데도 변화를 거부하는 기업은 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류카쿠산이 200년 동안 하나의 전통을 고수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끊임없는 개혁을 해 왔다”며 “전통이란 개혁의 축적”이라고 말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류카쿠산 개요
구분내용
창립 연도1871년
주력 제품 류카쿠산(한국명 용각산) 개발 경위회사 창립 전 아키타 현 일대 영주의 주치의이던 경영주의 선조가 지방 비전(秘傳) 처방에 서양의학을 접목해 약 200년 전 개발
본사 소재지도쿄 도 지요다 구 히가시간다
홈페이지www.ryukakusan.co.jp
일본 내 브랜드 인지율약 97%(15세 이상)
연간 매출약 40억 엔(약 320억 원)
사원120여 명
회사 형태비상장 주식회사
주요 수출국한국, 대만, 홍콩, 중국, 미국, 캐나다
한국 협력회사보령제약(용각산 제조 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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