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증시 51년 ‘영욕의 역사’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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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51년은 어떤 면에서 ‘인고(忍苦)’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기쁨과 환희보다는 좌절과 고난의 기억이 더 많았다. 많은 기업이 퇴장했고,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은 눈물과 한숨을 토해 내기도 했다.

1989년 3월 31일 처음으로 지수 1,000 선을 돌파한 뒤 18년 만에 맞은 지수 2,000 시대는 그래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3저(低) 호황으로 승승장구

국내에 본격적으로 증권시장이 열린 것은 1956년 3월 3일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되면서부터. 개장일에 상장된 종목은 조흥은행 등 4개 은행과 경성방직 등 6개 일반 기업, 대한증권거래소 등 2개 법인에 불과했다.

국채 매매 중심으로 이뤄졌던 국내 증시는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전환기를 맞는다.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한 당시 군사정부가 증권시장을 자금 조달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고 증시 육성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는 1970년 석유파동으로 주춤했지만 1980년대 후반 저금리, 저유가, 저원화가치(엔고) 등 이른바 ‘3저(低) 현상’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1,000 고지를 밟은 것도 이즈음이다.

○외환위기와 IT 버블 시련 넘어

국내 증시는 1997년 말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주가지수가 280.00까지 추락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 성과가 나타나면서 회복 기미를 보였지만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라는 강펀치를 얻어맞고 다시 쓰러졌다.

한국 증시는 2003년부터 대세 상승기에 접어들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펀드가 인기를 끌면서 개인 투자자들이 펀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증시 호황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 적립식펀드 투자 열풍은 국내 증시의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25일 현재 국내 펀드 투자금액은 약 260조 원에 이른다. 적립식 펀드 계좌 수는 900만 개를 돌파해 가구당 1개꼴로 대중화됐다.

국내 증시는 이제 코스피지수 2,000 시대를 열면서 선진 증시에 한 발짝 다가섰다.

하지만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서민들 살림살이와 경제성장은 정체돼 있는데 주가만 오른 측면이 있다”며 “투자와 성장이 균형을 이루면서 기업들의 체력이 더 강해져야 선진 증시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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