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센 그들이 ‘저가 시장’으로 간 까닭은?

  • 입력 2007년 5월 4일 02시 51분


○ 국내 글로벌 기업들의 화두는 저가 시장

삼성전자는 4월부터 베트남,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60달러(약 5만7000원)짜리 저가(低價) 휴대전화를 내놓았다. 선진국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동남아 지역의 휴대전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고가(高價) 전략을 다소 수정했다.

현대자동차도 500만 원대의 저가 차량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요 타깃은 중국, 인도, 동남아 시장이다.

최근 국내 글로벌 기업들의 화두는 ‘저가 시장’이다. 선진국의 고가 제품 시장이 정체돼 있는 반면 인도, 중국, 동남아시아 등 신흥 시장이 고속 성장하면서 신흥 시장의 저가 제품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저가로 고객 확보→프리미엄 시장으로 이동

그동안 신흥 시장의 저소득층은 구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외면당했다. 하지만 최근 소득 증가와 함께 수요가 늘면서 글로벌 기업의 주요 마케팅 대상이 되고 있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세계 이동통신 가입자 중 신흥 시장의 비중은 2004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는 62% 선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고가 전략을 고수해 온 삼성전자와 소니에릭손까지 저가 제품 판매에 가세하면서 저가 시장은 휴대전화 세계 1∼4위 업체가 경쟁하는 각축장으로 변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선진국에 비해 신흥 시장의 국민소득이 낮은 점을 감안해 저가 휴대전화로 고객을 확보한 뒤 이들을 자연스럽게 프리미엄 시장으로 이끈다는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의 고가 시장 확보를 위해 저가 시장 진출이 필요하다는 것.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1만 달러 미만인 저가 차량의 전 세계 시장 규모가 지난해는 487만 대였지만 2012년에는 865만 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 “새로운 성장 동력” vs “명품 이미지 구길 것”

저가 시장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시장을 넓히기 위해 저가 전략을 구사했다가 ‘명품’ 이미지만 구긴 채 고가 전략으로 돌아선 패션 브랜드 구찌처럼 브랜드 가치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 정보통신총괄 최지성 사장은 최근 “애니콜이 한국 제품 중에서는 처음으로 싸구려 이미지를 벗고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굳혔기 때문에 가격으로 승부하는 것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역시 해외 시장에서 ‘가격만 싼 차’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 내지 못한 상황에서 섣불리 저가 차량을 내놓는다면 다른 차종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가 제품을 만드는 기술력보다 저가 제품을 만들어 내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실제로 현대차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불필요한 품목을 없애고 값싼 내구재를 장착하는 등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후문이다.

LG경제연구원 나준호 책임연구원은 “저가 제품으로 수익을 내려면 기존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제품 구조와 제조, 마케팅 방식이 필요하다”며 “신흥 시장 공략의 열쇠는 가격이 아니라 혁신”이라고 말했다.

지역별 저가차 수요 전망(단위:만 대)
2006년2012년
신흥국 시장선진국 시장합계신흥국 시장선진국 시장합계
초저가차
(6000달러 미만)
68.1- 68.1172.8-172.8
저가차
(1만 달러 미만)
222.1197.2419.3424.6267.6692.2
합계290.2197.2487.4597.4267.6865.0
자료: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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