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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4월 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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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쇠고기 위생검역은 구두약속으로 대체
미국이 시장 개방을 요구하면 한국이 FTA 협상을 깰 수도 있다고 못 박은 쌀은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쇠고기 위생검역 기준 완화는 미국이 당초 문서로 약속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구두(口頭) 약속으로 대체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김 본부장은 “올해 5월 이후 과학적 기준에 따라 위생검역 기준 완화를 검토하는 절차를 조속히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은 5월 결정되는 국제수역사무국(OIE) 광우병 위험등급 판정에서 ‘광우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국가’에 해당하는 2등급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뼈 있는 미국산 쇠고기도 수입이 불가피해진다.
한국은 또 현행 40%인 미국산 쇠고기 관세를 협정 발효 후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다만 수입이 급증하면 일시적으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크게 늘어 현재 한국 수입 쇠고기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호주나 뉴질랜드산을 점진적으로 대체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
양국은 나머지 민감 농산물을 둘러싼 관세 양허안(개방안)에도 합의했다.
제주 감귤농가 피해 문제 때문에 마지막까지 공방을 거듭했던 오렌지는 국내산 유통기간인 매년 9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현행 관세 50%를 그대로 유지하되 다른 시기에는 계절관세 30%를 7년간 적용한 뒤 폐지하기로 했다. 또 수확기에 연간 2500t의 무관세 쿼터(수입할당물량)를 미국에 주기로 했다.
식용 감자, 식용 대두, 꿀, 탈지분유, 전지분유 등 5개 품목은 미국에 저율관세할당(TRQ) 물량만 부여하고 현행 관세를 유지하기로 했다.
■섬유
스웨터 등 화섬의류 수출증대 효과 커
미국은 수입액 기준으로 61%에 대한 관세를 즉시 폐지하고 리넨, 여성 재킷, 남성 셔츠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해서는 원사(原絲)로 생산지를 판정하는 ‘얀 포워드 규정’을 적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30%대 고(高)관세로 수출돼 온 스웨터 등 화학섬유 의류는 4∼8%대 관세율을 적용받아 온 원사나 면사 등에 비해 보다 큰 수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은 중국 등을 통한 우회 수출을 막아야 한다는 미국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내 수출업체의 경영정보를 제공하는 등의 협력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원사를 대부분 중국 등지에서 들여오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얀 포워드 규정’을 적용받지 못하는 제품의 수출 증대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도 있다.
■자동차
車 특소세 내려 미국산 진출 쉬워져
미국은 3000cc 미만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 관세를 협정 발효 후 즉시 폐지하기로 했다. 3000cc 이상 승용차는 3년, 타이어는 5년, 픽업트럭은 10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한국이 당초 승용차 관세를 즉시 폐지하라고 미국 측에 요구했던 것에 비하면 다소 미흡하지만 현재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산 승용차와 일본산 승용차의 가격차가 3%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상당 수준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한국은 대신 배기량 2000cc 이상은 10%로 돼 있는 현행 자동차 특별소비세를 3년 내에 5%까지 낮추기로 했다. 또 현행 5단계인 자동차 보유세를 대형·중형·소형 등 3단계로 축소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양국 간 오랜 통상 현안을 해결하고 국내 소비자의 자동차 세 부담을 덜어 자동차 내수(內需)를 진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으나 대형차 위주인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시장 공략은 더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
외환 위기 땐 자금이탈 일시통제
한국은 외환위기 등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외화가 급격하게 빠져 나가는 것을 통제하는 안전장치인 ‘일시적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미국이 이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막판 협상에서 결국 한국의 요구를 수용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경제위기 때 해외 투기성 자금이 일시적으로 빠져나가 경제 시스템 전체를 위협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갖추게 됐다.
한국은 또 미국 금융회사가 한국에 영업점을 두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를 통해 보험 등 각종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경 간 거래는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는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또 미국에는 있지만 국내에는 없는 신(新)금융상품도 건별로 금융감독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밖에 서민이나 농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공적 역할을 수행하는 한국산업은행, 기업은행, 주택금융공사, 농협, 수협 등 국책 금융기관들은 협정문 적용의 예외로 인정하기로 했다. 그 대신 씨티은행 등 국내에 진출한 미국계 금융회사가 미국 등에서 영업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신용평가업은 국경 간 거래를 허용하지 않되 미국 신용평가사가 국내에 지점이나 현지 법인을 설립해 진출할 때는 허가 조건을 완화해 주기로 했다.
또 우체국보험 및 일부 공제기관은 특수성을 인정하되, 금융감독을 강화해 잠재적 부실 가능성을 축소키로 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FTA 용어 풀이
○원산지 규정
상품의 국적을 판명하는 기준. 한미 FTA에서는 섬유 및 의류 분야에서 쟁점이 됐다. 한국은 중국 등에서 원사(原絲) 등을 수입해 국내에서 옷을 만들면 이를 한국산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원사는 물론 생산, 최종 제품까지 모든 것이 한국에서 이뤄져야 한국산으로 인정해 무관세 혜택을 준다는 ‘얀 포워드(yarn forward)’ 방식을 주장했다.
○세이프가드(Safeguard)
특정 상품의 수입이 크게 늘어나 피해를 보는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취하는 긴급 수입제한조치를 말한다. 한미 FTA 협상에서는 한국 측의 요구에 따라 금융과 쇠고기 등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도입하기로 했다. 반대로 섬유 부문에서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세이프가드가 도입됐다.
○ 양허와 개방
양허와 개방은 비슷한 의미지만 양허에는 개방에는 없는 ‘구속력’이 포함된다. 개방은 말 그대로 시장을 여는 것을 뜻하지만 양허는 개방을 하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개방 결정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국가간의 약속이라는 의미다. 양허관세는 국가간 협상을 통해 관세를 일정 세율 이상으로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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