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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2월 2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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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팀장 부부는 1982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첫아이 석준이를 얻고 뭐든지 잘해주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옷은 최고급으로만 입혔습니다. 해외출장을 가도 아이에게 뭘 사줄까 하는 생각뿐이었어요. 국내에선 보기도 힘든 비싼 장난감도 많이 사다줬죠.”
아이가 다섯 살쯤 됐을 때는 당시로선 거금을 들여 미니 자동차를 사줬다.
“그런데 두어 달도 안돼서 애가 싫증을 내더니 다른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서야 ‘아. 이게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천 팀장은 전략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친지, 이웃들이 입던 헌 옷을 입게 했고 장난감, 책 등도 중고를 구했다. 1990년에 태어난 둘째 석현이에겐 처음부터 ‘중고품 교육’을 했다.
천 팀장 부부는 과외도 ‘품앗이’로 해결했다. 뜻 맞는 학부모들과 함께 그룹을 만들어 성악가인 조 씨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미대를 나온 엄마는 미술, 다른 엄마는 수학을 가르치는 식이었다.
하지만 천 팀장은 1997년까지의 자신의 교육은 ‘헛것’이었다고 말한다.
천 팀장의 부친은 상당한 재력가였다. 서울 강남지역에 아파트도 여러 채 있었다. 그런데 위암을 앓던 부친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이렇게 말했다.
“상속 많이 해준 집 치고 자식들이 잘되는 경우가 없더라. 내 재산은 전액 사회에 환원하겠다.”
천 팀장은 당시 무척 충격을 받았고 서운하기도 했다고 회상한다.
“청소년 경제교육을 한다는 나도 주변의 수입 차나 호화 빌라를 보면 ‘아버지 재산 물려받으면 저걸 사야지’하는 생각만 했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 45년 된 털내복을 입고 계셨어요. 평생 그렇게 아껴 모으신 재산을 사회에 완전히 내놓은 거죠. 아버지는 항상 ‘남한테 은혜 받은 것은 잊지 말고, 준 은혜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셨어요. 그때서야 저도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천 팀장은 최근 일고 있는 경제교육, 특히 경제 캠프 붐에 대해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교육은 한 번의 이벤트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특히 재테크형 경제 캠프는 위험해요. 재테크는 기본적으로 ‘제로섬(zero sum)’ 게임이죠. 버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에요. 돈이 무엇인지, 왜 벌어야 하는지 올바른 시각이 형성되기 전에 돈 버는 법만 가르치면 경제관이 왜곡될 수 있어요. 청소년기에는 재테크보다 돈의 올바른 가치와 경제 원칙을 가르쳐야죠.”
풍요 속에서는 귀한 것을 깨닫기 어려운 법. 그래서 석준이와 석현이는 용돈을 넉넉히 받아본 적이 없다.
석준 씨는 대학에 들어가서도 한달에 30만 원 넘게 용돈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분당 집에서 학교까지 오가는 차비를 빼면 십몇만 원으로 한달을 살아야 했다. 휴대전화 요금을 빼면 친구들과 술자리에 가는 것도 두려울 정도였다.
대학원에서 조교생활을 하는 지금은 조교 월급으로만 생활한다. 심리학과 대학원 연구실의 ‘청일점’인 그는 도시락을 싸오는 유일한 학생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석준이가 조교 월급을 푼푼이 모았다면서 등록금에 보태라며 꽤 많은 돈을 내놓더라고요. 그래도 제가 애들 키우느라 헛고생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남=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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