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수조원 하수관타고 ‘줄줄’

  • 입력 2006년 10월 14일 02시 56분


수조 원의 혈세가 하수관을 타고 그대로 버려질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한강 낙동강 등 4대강 주변지역에서 더러운 물을 처리하는 대규모 하수관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부가 건설회사에 요구한 준공 기준 자체가 엉터리였음이 뒤늦게 드러났다.

공사가 제대로 됐는지 판단할 준공지표 자체가 근거가 없는 지표임이 확인되면서 하수관 사업 자체가 부실화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이미 공사가 끝난 지역에선 준공검사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하수처리를 하고 있고, 공사가 진행 중인 곳에선 어떤 기준으로 공사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20년까지 35조 원을 들여 5만1664km에 이르는 전국의 하수관을 정비할 계획이다.

13일 환경부에 따르면 시범지역으로 선정된 경기 가평군과 양평군은 2004년 10월 하수관 정비공사가 끝났고, 구리시 남양주시 등 다른 한강 상수원 지역에서도 대부분 공사가 마무리 단계다.

낙동강 영산강 금강 주변지역에서도 현재 하수관 정비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까지 투입된 예산은 모두 5조8000억 원.

하지만 하수관 정비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난 지난해 10월 감사원은 환경부가 제시한 준공기준인 I·I(Infiltration 침입수·Inflow 유입수)분석이 공사의 부실 여부를 가릴 수 없는 엉터리 지표라고 밝혔다.

수조 원이 들어간 국책사업이 제대로 됐는지 판단할 근거가 사라져 버린 것.

환경부는 하수관으로 유입되는 빗물이나 지하수의 양이 하수관을 흐르는 하수량의 최대 20%를 넘지 못하도록 준공기준을 세웠다. 하지만 하수량이 날씨와 시간, 계절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유입수의 양을 측정해야 하는지 난감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가평 양평지역은 준공검사도 받지 못한 채 하수관과 하수처리장을 운영하고 있다.

환경부는 2001년 2월∼2002년 9월 265억 원을 들여 전국 16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하수관 정비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할 때도 I·I분석을 활용했다. 타당성 조사 때부터 엉터리 지표를 활용해 예산을 낭비한 셈이다.

환경부는 당시 I·I분석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고 홍보했지만 뒤늦게 문제가 되자 책임을 환경관리공단으로 떠넘기고 있다. 박희정 환경부 상하수도국장은 “공단이 I·I분석이 뭔지 잘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환경관리공단 관리시설처의 최익훈 팀장은 “미국 물환경연합회(WEF)와 토목학회(ASCE)가 펴낸 ‘기존 하수관거의 평가 및 복구’에 나와 있는 I·I분석 기준을 참고해 준공지표를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감사원의 감사 결과 I·I분석은 가정(假定)을 근거한 이론으로 객관성이 떨어져 미국에서조차 준공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는 올 3월 대한상하수도학회에 준공지표의 타당성을 묻는 용역을 맡겼다가 학회에서도 “I·I분석은 준공지표로 쓰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새로운 준공지표를 만들어달라며 용역을 맡긴 상태다.

하수관 정비사업에 참여한 한 시공업체 관계자는 “3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투입될 하수관 사업에 전문가들로부터 검증도 안 된 준공지표를 사용한 정책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단순한 정책실패가 아니라 환경부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I·I(Infiltration 침입수·Inflow 유입수) 분석

하수관 상태 점검과 관련된 이론 중 하나. 각 가정과 상가에서 나온 하수량과 하수관을 통해 하수처리장까지 도달한 하수량을 비교해 중간에 유입된 깨끗한 물인 지하수(침입수)나 빗물(유입수)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를 측정한다. 하수관에 유입된 지하수나 빗물이 많을수록 하수관이 부실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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