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아줌마 “요즘 돈심부름해요”

  • 입력 2006년 5월 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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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최근 크게 떨어지자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외화 암거래 상인인 이른바 ‘달러 아줌마’를 찾는 손님이 줄어들었다. 지난달 말 암달러 상인들이 계산기를 앞에 놓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김재명  기자
환율이 최근 크게 떨어지자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의 외화 암거래 상인인 이른바 ‘달러 아줌마’를 찾는 손님이 줄어들었다. 지난달 말 암달러 상인들이 계산기를 앞에 놓은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김재명 기자
“달러 좀 바꾸려는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저 아주머니한테 가 보세요. 저 끝에 모자 쓰고 앉아 계신 분.”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떡볶이와 순대를 파는 포장마차 옆에 종이상자를 놓고 간이의자에 앉아 있던 50대 여성이 바로 ‘달러 아줌마’였다.

그뿐 아니었다. 달러 아줌마의 특징을 알고 나니 평소엔 무심코 지나쳤던 달러 아줌마가 10여 명이나 눈에 들어왔다.

○ 이들이 바로 암달러 상인

챙 넓은 모자에 수수한 외투, 빛바랜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어깨에서 허리까지 비껴 멘 채 누가 채가기라도 할까봐 앞으로 돌려놓은 가방이 그들의 특징이었다. 수수한 옷차림과 달리 묵직한 가방에는 원화, 달러화, 엔화가 수백∼수천만 원어치씩 들어 있다고 했다.

달러 아줌마의 ‘영업소’는 간단했다. 좌판처럼 펼쳐 놓은 종이상자, 그 위에는 ‘○○엄마’ 등의 가명이 적힌 명함과 계산기, 휴대전화. 그게 다였다.

환전 과정도 영업소만큼이나 간단하다. 은행이나 공인환전소에서 환전할 때 거쳐야 하는 번거로운 서류도, 신분증도 필요 없었다.

“달러 사려는데 얼마예요?”라고 물어 보니 “9만5300원”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100달러를 9만5300원에 팔겠다는 뜻이다. 이날 시중은행에서 100달러를 사려면 9만5990원을 줘야 했다.

하지만 달러 아줌마의 ‘가게’는 한산했다. 지난해부터 환율이 꾸준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를 때에는 외화를 사서 들고만 있어도 환차익이 생기지만 환율이 떨어질 때는 외화를 들고 있으면 손해를 본다.

○ 달러 아줌마들의 ‘변신’

공인 환전상이 외화 암거래 상인과 가격 경쟁에서 뒤지자 환율 시세표를 꺼놓은 채 영업하고 있다. 매매율을 표시하지 않고 환전 영업을 하는 것은 불법이다. 김재명 기자

장사가 안 되다 보니 달러 아줌마들은 사업 영역을 넓혔다. 손님을 기다리지 않고 휴대전화로 남대문시장의 상인들에게 전화 주문을 받고 시장거리를 헤치며 ‘환전 배달’을 시작했다.

상인들은 종종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엔화나 달러화, 위안화를 받는다. 관광객들은 은행에서 수수료를 내고 소액을 환전하느니 상인에게 자국 화폐를 내는 경우가 많다. 달러 아줌마는 이렇게 상인이 받은 외화를 사면서 원화를 배달해 준다.

환전 배달과 함께 생겨난 새로운 영업 방식으로 ‘주간(週間) 매매율 설정’이 있다.

2∼3년 전만 해도 하루에도 몇 번씩 은행의 기준 환율을 확인해 자신들의 매매율을 정했지만 최근에는 일주일 동안의 매매율을 미리 정해 급격한 환율변동 위험을 줄이고 과당경쟁도 피한다.

○ 다급해진 공인환전소

달러 아줌마가 생존을 위해 변신하자 한국은행에 등록된 공인환전소들이 어려움에 처했다. 한때 남대문시장 북쪽 길에만 5, 6곳에 이르렀던 공인환전소는 현재 대부분 문을 닫았다.

이날 기자가 찾은 한 환전소는 환율시세 전광판의 불을 꺼 뒀다. 환전소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손님이 전광판의 시세를 보면 말 한 마디 걸어 보지 않고 돌아나가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는 불법. 한은 환전사업관리계 조지은 조사역은 “환전영업을 할 때 매매율을 미리 알리지 않으면 영업 제재사항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등록 상인이 암거래상을 따라하기 시작한 것이다.

달러 아줌마와 환전상이 몰려 있는 곳은 한국은행과 마주 본 남대문시장 북쪽 큰길가. 중앙은행 정문 앞에 국내 최대의 지하 외환시장이 펼쳐진 셈이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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