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이 움직인다…“제2도약 준비” 이례적 주문

  • 입력 2006년 4월 1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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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가치와 국제유가 동반 상승, 중국 등 후발 개발도상국들의 거센 도전, 정부 여당의 ‘사회 공헌 압박’에 따른 스트레스, 재계 서열 2위인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

동시 다발로 몰려오는 각종 악재로 ‘잔인한 4월’이란 말이 나올 만큼 한국 기업들이 속병을 앓고 있는 2006년 4월. 최대 기업 삼성그룹을 이끄는 이건희 회장이 그동안의 은둔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X파일 사건’ 등의 악재가 불거진 뒤 침묵을 지키면서 이학수(부회장) 전략기획실장을 통해 그룹을 간접 지휘해 온 이 회장이 최근 계열사 사장단을 직접 불러 ‘외부 환경 변화에 잘 대응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삼성그룹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이 회장이 3월 말부터 계열사 사장단을 순차적으로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삼성영빈관)으로 불러 세부 현안을 보고 받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 측은 또 “이 회장은 사장단과의 만남에서 ‘악화되고 있는 외부 경영 환경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경영 시스템을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하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1년에 한 번 정도 전자 소그룹 사장단 회의에 참석해 온 이 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을 순차적으로 불러 구체적인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지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소그룹 단위가 아닌 세부 사업 분야별로 회의를 하는 것은 구체적이고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돼 그룹에서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 회장은 우선 3월 27일 삼성전자 황창규 반도체 총괄 사장을 불러 최근 세계 반도체 시장 동향과 전망에 대해 상세히 보고 받고 대응책을 논의했다.

3월 29일에는 삼성전자 디스플레이와 디지털미디어 관련 분야 사장단과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는 최지성 디지털미디어 총괄 사장, 이상완 액정표시장치(LCD) 총괄 사장, 김순택 삼성SDI 사장 등이 참석해 일본 업체들의 견제 움직임 등 시장 동향에 대해 보고했다.

아직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나머지 전자 계열사 사장들도 이달 중 승지원을 방문할 예정이다.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 금융 계열사들은 5월 9일 만찬을 겸해 승지원에 모인다. 삼성물산, 삼성에버랜드, 신라호텔, 삼성석유화학 등 이른바 ‘독립 계열사’ 사장들도 5월 말쯤 이 회장에게 직접 보고할 예정이다.

삼성 전략기획실 고위 임원은 “이 회장이 2년 가까이 그룹 현안을 직접 챙기지 못했기 때문에 사장들을 불러 각 계열사의 관심 사항을 일일이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직접 경영’을 통해 장기간의 해외 체류와 대(對)국민 사과 발표 과정에서 다소 흐트러진 조직 분위기를 다잡는 효과도 겨냥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내년 정기인사를 앞두고 일부 계열사 사장과 임원의 근무 기강이 다소 해이해졌다는 말이 있다”며 “회장도 이런 분위기를 보고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 가운데 60% 이상은 사장들이 통상적인 임기인 2, 3년을 넘겨 내년에는 큰 폭의 물갈이 인사가 확실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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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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