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간 연수를 마친 삼성그룹 공채 16기 신입사원 250명이 인사 서류에 희망 계열사를 적고 있었다. ‘상사맨’과 ‘제조업’을 최고로 치던 당시 분위기에서 이들의 1, 2, 3지망은 순서만 달랐을 뿐 거의 똑같았다. 두 청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일모직 제일제당 삼성물산.’
현실은 달랐다. 둘은 동기생 44명과 함께 신세계백화점으로 배치됐다. 부모님들은 “대학 나와서 ‘서비스’가 웬 말이냐”며 실망했다.
하지만 두 청년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살인적인 업무와 교육을 묵묵히 이겨내며, 맡겨진 일은 120% 완수하고 위아래로부터 인정받으며 30년을 지냈다. 그 사이 나머지 동기들은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2005년 10월 24일. 신세계백화점 부문 석강(56) 대표와 이마트 부문 이경상(56) 대표, 동갑내기 두 청년은 30년 근속표창을 받았다.
○성향은 달라도 함께 걸어온 길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온 석 대표와 연세대 경영학과 출신의 이 대표는 입사 직후 관리과에서 1년간 함께 근무했다. 석 대표는 신규사업 부문, 이 대표는 관리 부문 업무를 맡으며 호흡을 맞췄다.
석 대표는 당시 이 대표를 “부드럽고 꼼꼼했다”고 기억한다. 이 대표는 석 대표가 “진취적이고 저돌적이었다”고 회상한다.
둘은 서로를 정확히 봤다.
석 대표는 1984년 영업총괄부장을 시작으로 영업전략실장, 백화점 천호점장, 본사 마케팅실장, 영업본부장 등을 거치며 영업통으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1985년 영업관리부장으로 승진한 이후 경영기획팀 부장, 이마트 지원본부장, 본사 경영지원실장 등을 지내며 관리통으로 컸다.
최고경영자가 된 것도 석 대표는 서울 중구 충무로 본점 신축 프로젝트가 한창인 2003년, 이 대표는 이마트가 초고속 성장으로 점포가 70개를 넘어서면서 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2004년이었다.
○우정과 경쟁
두 사람은 서로를 “상호 보완하는 관계”라고 한다.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30년간 상대방에게 해온 조언이 지금의 최고 자리에 오르기까지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석 대표는 “분석력이 뛰어난 이 대표의 의견이 백화점의 경영 방향을 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하고, 이 대표는 “석 대표의 저돌적 도전정신을 본받아 이마트 경영에 적용하고 있다”고 서로를 치켜세운다.
‘상호보완’은 주로 사석에서 이뤄진다.
두 대표는 서울 반포에서 20년 넘게 이웃사촌으로 지내면서 주말이면 부부동반으로 만나 식사도 하고 등산도 하며 의견을 나눈다. 골프를 함께 치면서도 “장타를 주로 치지만 가끔 OB를 내는 석 대표”(이 대표)와 “홀 컵 바로 앞까지 정교하게 끊어 치는 이 대표”(석 대표)는 일 얘기를 계속한다. 근속 30년 휴가도 함께 해외에서 보낼 계획이다.
서로 도움을 주며 30년을 보냈지만 마지막 경쟁은 남아 있다. 아직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언젠간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신세계 총괄 사장 자리를 맡아야 한다.
이 대표는 “우리 사이에서 승진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스스로를 욕보이는 것”이라고 얼굴을 붉힌다. 석 대표도 “일에만 묻혀 사느라 인사공고가 난 뒤에도 승진사실을 몰랐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자리에 연연할 시간에 회사 일 하나 더 하는 게 우리 두 사람”이라며 “일 때문에 우정에 금 갈 일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서로 손을 잡았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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