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수 준 전경련… 조용히 실익챙기기?

  • 입력 2005년 9월 27일 03시 07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용하다. 전경련 주변에서는 ‘절간’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대기업 정책과 관련해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정부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일도 거의 없다. 강신호(姜信浩) 회장 2기 체제를 주도하는 관료 출신의 조건호(趙健鎬) 부회장과 하동만(河東萬) 전무는 정부나 사회를 향한 발언을 가급적 자제하고 실리를 중시한다는 방침이다. 잠시 공직에 몸담았으나 오랫동안 기업 생활을 했던 현명관(玄明官) 전 부회장이 대기업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소신을 뚜렷이 밝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재계에서는 전경련이 마찰을 우려해 ‘납작 엎드리는’ 전략을 택한 것이 과연 옳은지에 대해 논란도 적지 않다.》

○ 달라진 전경련 운영 방침

지난해까지 전경련은 대기업 정책 방향을 놓고 정부 여당과 대척점에 서 있었다.

대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를 찾아가고 연일 보도자료를 뿌리면서 문제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증권집단소송과 관련해서는 대기업의 과거 분식 사면 문제를 국회에 들고 가 공론화시켜 결국 관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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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올해 들어 현 전 부회장과 좌승희(左承喜)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이 물러나고 조 부회장과 하 전무가 전경련을 실질적으로 이끌면서 전경련의 ‘몸 사리기’가 두드러지고 있다는 평이다.

최근 전경련의 활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경영 △대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등 윤리경영 실천 △정부와의 협력관계 구축에 집중돼 있다. 전경련이 중소기업 하도급 우수 사례와 윤리경영 실천 사례에 대해 잇따라 발표회를 갖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 전경련 역할 논란

그렇다고 현재 재계의 목소리를 낼 만한 현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출자총액제한제 및 수도권 대기업 투자 허용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대기업 A사의 한 임원은 “중소기업과 상생경영을 하고 투명한 윤리경영을 하는 것은 전경련이 나서지 않아도 개별 기업 차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며 “전경련이 재계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줘야 하는데 제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특히 최근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대기업 때리기’가 유행처럼 번져 가는데도 전경련이 이에 대한 입장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재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기업 B사 관계자는 “전경련이 물밑에서 회원사 이익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피부에 와 닿는 것이 없다”면서 “개별 기업 차원에서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모아 전경련에서 총대를 메 줘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 눈치만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정부와 사사건건 충돌한다고 해서 얻는 이익이 별로 없다”며 “대기업 정책에 대해선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정부와 물밑 접촉을 통해 재계의 입장을 알리는 데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정부 정책을 대놓고 비판하기보다는 충돌하지 말고 실리를 챙기자는 게 현 지도부의 노선인 듯하다”고 말했다.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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