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삭막한 디지털 가족?…천만에! 情이 넘쳐요

  • 입력 2005년 3월 9일 1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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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엽 과장 가족이 가는 곳은 거실, 서재, 자동차 어느 장소든 ‘디지털 세상’이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면 집안 어느 곳에서나 같은 영상과 사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는 나들이 길을 지도로 보여주고 가족 나들이는 아들 호연 군의 디지털카메라에 차곡차곡 기록된다. 이종승 기자
박주엽 과장 가족이 가는 곳은 거실, 서재, 자동차 어느 장소든 ‘디지털 세상’이다. 집안 곳곳에 설치된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하면 집안 어느 곳에서나 같은 영상과 사진,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는 나들이 길을 지도로 보여주고 가족 나들이는 아들 호연 군의 디지털카메라에 차곡차곡 기록된다. 이종승 기자
“컴퓨터 때문에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아요.”

“휴대전화가 있다 보니 부모와 자식 사이의 대화가 줄어들고 늘 친구들과 전화만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부모는 정보기술(IT) 발전이 가족을 갈라놓고 있다고 걱정한다. 점점 개인화되는 IT 기기가 가족도 해체시킨다는 우려다.

하지만 사람이 만들어 낸 기술은 결국 사람이 슬기롭게 사용하기 나름. IT 서비스 업체 LG CNS에서 시스템엔지니어로 함께 일하는 ‘사내(社內) 커플’ 박주엽(35) 정경미(34·여) 과장 부부의 하루는 IT 기기가 가족을 묶어주는 ‘사람 냄새’ 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전 10시, 가족 나들이=“디카, 디카 가져가야죠!”

5일 주말을 맞아 나들이 길에 나선 박 과장 가족. 이 날은 아들 호연(4)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부모님을 초청한 날이다. 호연이는 서재에서 디지털 캠코더를 가지고 나왔다.

디지털카메라와 디지털캠코더는 호연이의 외출 필수품. 어머니는 “애가 둘 중 하나라도 손에 들지 않고서는 집을 나서려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필름 값이 들지 않는 디지털 촬영기기는 부모가 호연이에게 자유롭게 촬영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 좋은 장난감이자 가족의 역사를 기록하는 도구.

호연이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컴퓨터와 각종 디지털 기기를 이것저것 마련해 놓은 부모 덕분에 자연스레 IT 기기에 익숙해졌다.

처음 가 보는 유치원. 운전을 맡은 박 과장은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를 꺼내 들었다.

“호연아 유치원 이름이 어떻게 됐지?”

호연이는 아직 지도를 볼 줄 모르지만 아빠 손에 들려 있는 기계는 마냥 신기하다. 아빠에게 PDA를 가까이 보여 달라고 졸랐다. 지도가 나오고 현재 가족의 위치가 인공위성자동위치측정시스템(GPS)을 통해 PDA 화면 속 지도에 표시됐다. 박 과장이 목적지를 입력하자 유치원 가는 길이 화면에 빨간 줄로 표시됐다. 호연이는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입을 크게 벌렸다.

▽오후 3시, 거실=“영화 봐요, 아빠∼!”

이 가족의 거실에는 영화 상영용 프로젝터와 5.1채널 입체음향 스피커 6개, 디지털 고화질방송(HD)용 TV, DVD와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 음악을 재생하는 ‘멀티미디어 플레이어’ 등이 준비돼 있다.

박 과장은 호연이가 유치원에서 촬영한 디지털캠코더 영상을 서재의 노트북컴퓨터에 연결했고 곧 가족이 모두 거실에 모였다. 서재 컴퓨터에 저장된 동영상 파일은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를 통해 거실의 프로젝터로 재생된다. 100인치 스크린에 유치원 친구들의 얼굴이 나오자 호연이가 깔깔거리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박 과장 가족이 사는 곳은 경기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의 한 아파트. 정보통신 1등급 인정을 받은 이 아파트는 100Mbps급 초고속 인터넷을 집안 곳곳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이 가족의 컴퓨터는 가족이 함께 쓰는 구식 노트북컴퓨터 1대와 부부가 회사에서 쓰는 노트북컴퓨터 각각 1대, 손님방의 고성능 데스크톱컴퓨터까지 모두 4대. 모든 컴퓨터는 아파트의 근거리통신망(LAN)으로 연결돼 있다. 어느 컴퓨터의 사진이건 서재의 포토프린터로 사진처럼 인쇄할 수 있으며 거실의 대형 스크린에 재생할 수 있다.

거실의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는 음악 파일도 리모컨으로 찾아 재생시켜 준다. 설날 찍은 가족사진이 슬라이드쇼로 재생되고 컴퓨터에 저장된 MP3 음악도 함께 재생됐다.

▽오후 4시, 서재=“엄마, 리틀팍스 할래요.”

최근 호연이는 노트북컴퓨터를 만지는 재미에 푹 빠졌다. 호연이가 즐겨 찾는 사이트는 ‘리틀팍스’라는 영어교육 홈페이지. 재미있는 동영상과 게임이 많아 스스로 동요를 따라 부르기도 하고 게임도 즐긴다. 아직 글을 모르는 호연이는 엄마가 주소창에 주소를 입력해주면 그림만으로도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룬다.

엄마가 호연이의 인터넷 서핑을 도와주는 동안 아빠는 인터넷으로 최신 할리우드 영화를 내려받았다. 영화 한 편을 내려받는 데 걸린 시간은 10분 정도. 호연이가 잠들고 난 뒤 부부가 함께 볼 영화였다.

자식을 키우기 바빠 극장에 갈 시간을 내기 어렵다는 박 과장 부부는 이렇게 ‘간이 영화관’을 통해 영화를 보며 토요일 저녁을 마무리한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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