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함승희]현직검사의 기업행 유감

  • 입력 2005년 2월 6일 17시 49분


검찰 특수부나 공안부에서 거대한 부패 세력이나 대한민국 전복 기도 세력과 싸워 이기려면 검사 개개인에게선 오만으로 느껴질 정도의 자존심과 명예감, 그리고 당당함이 온몸에서 배어 나와야 한다. 사회적 거악과 맞서 싸우다 보면 거액의 돈으로 매수하려는 자, 인사의 이익·불이익 또는 정치적 출세를 미끼로 협박 또는 유혹하는 자, “평생 검사나 해먹어라”고 저주를 퍼붓는 자, 심지어 평생토록 자기 아버지보다 더 섬기겠으니 잘 봐 달라고 읍소하는 자 등 많은 장애물이 있게 마련이다.

이런 온갖 난관을 이겨내는 게 역발산(力拔山)의 기개 없이 가능한 일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검찰 정신’이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지금까지 검찰이 대한민국 최고의 사정기관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검찰 혼’으로 무장된 검사들이 맥을 이어 온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몇 달 사이 검찰에서 명성을 떨치던 중량급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개인기업체의 임원으로 특채돼 가더니 급기야는 아예 현직 중견 검사, 그것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요직을 두루 거친 이들마저 잇달아 사(私)기업체의 사장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보도를 보고 검찰의 장래에 대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과거에 없던 이 같은 현상은 대기업들의 기업 방어라는 ‘수요’와 변호사 양산 및 경제적 불황이라는 이중고 속에서 변호사 개업이 두려운 일부 현직 법조인의 ‘공급’이 맞아떨어져 생긴 기현상이다. 그것이 몇몇 법조인의 개인적 취향에 그칠 일이라면 문제가 아니겠으나,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공직자윤리법 제17조는 공직자는 퇴직 후 2년간 퇴직 전 3년간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의 취업을 금지하고, 이 법 제29조는 이를 위반하는 당사자는 1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검사, 특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나 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는 기업체의 범죄 혐의를 수집하기 위한 내사 활동을 상시적으로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적어도 이런 부서에서 수사·정보활동을 총괄했던 이는 법의 정신을 감안해 직업 선택의 자유에 스스로 내재적 한계를 두는 게 상식에 맞는다. 혹자는 변호사로서 특정 기업체의 불법 사건을 수임해 변호하는 것과 그 회사에 들어가 월급을 받아 가며 불법을 방어하는 일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독립된 변호사로서 사건을 수임한 경우엔 위임인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 조력의 의무만 질 뿐이다. 그러나 많은 월급과 보너스, 경우에 따라선 스톡옵션까지 보장된 특정 기업체의 임원으로 채용되면 그 기업체 또는 기업주에 대한 무한 충성 의무를 지게 된다. 엊그제까지 검찰에서 끊임없이 기업체에 대한 내사 활동을 했던 이가 곧바로 기업체 임원으로 문패를 바꿔 다는 모습은 아무리 넉넉히 생각하려 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이미 떠난 이는 떠난 것이고 이제 남은 검찰인들에게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퇴임 후 대기업에 특채되고 싶은 이는 기업 비리를 내사하는 중수부나 특수부 근무는 처음부터 스스로 피해야 한다. 아니면 검사 옷을 벗은 뒤 한동안 쉬다가 중수부나 특수부 검사로서의 직접적 영향력이 사라진 뒤에 기업에 가는 것이 옳다. 그것이 수사를 통한 사법 정의의 실현을 신앙처럼 믿고 검찰에 남아 있는 선후배 검사들에 대해 떠나는 이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배려라고 생각한다.

함승희 변호사·미국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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