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 “女風당당”…삼성-LG등 승진인사 잇단 우먼파워

  • 입력 2005년 1월 13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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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에서 여성들이 떠오르고 있다. 오랫동안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직장인의 별’ 임원으로 승진하는 여성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검증된 ‘제1세대 여성리더’들이다. 재계에서는 “앞으로 5년만 있으면 여성들의 약진에 무서운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에 따라 기업문화도 적지 않게 바뀔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기업에 불고 있는 변화의 조짐을 집중 분석해 본다.》

“여성 임원으로 찾아주십시오. 기업문화를 바꿀 여성 리더가 필요해요.” 헤드헌팅업체 유앤파트너즈 유순신 대표는 최근 임원을 스카우트하려는 한 국내 주요 대기업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받았다. 또 다른 대기업도 “되도록 여성이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해왔다. 최근의 변화를 엿볼수 있는 모습이다.

○‘유리천장’ 깨지나

12일 삼성그룹의 임원인사에서는 기존 여성 임원 3명의 직급이 높아졌고 부장급에서 새로 임원으로 승진한 여성도 3명에 이르렀다. 삼성SDI에서는 35년 만에 첫 여성 임원이 배출됐다. 이로써 삼성그룹의 여성 임원은 총 14명으로 늘었다.

이에 앞서 LG그룹은 LG전자 류혜정 상무와 LG CNS 임수경 상무를 새로 임원으로 승진시켰다. 그룹 내 여성 임원은 모두 9명.

SK그룹은 지난해 3월 SK텔레콤 윤송이 상무, 4월 SK 강선희 상무를 영입했다. 이 그룹에서 여성 임원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금융권에는 국민은행 구안숙 부행장, 제일은행 김선주 상무, 삼성증권 이정숙 상무, 삼성카드 김은미 상무, 삼성화재 박현정 상무보 등이 포진해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달 강남, 분당 중 주요 지점에 14명의 여성 지점장을 한꺼번에 발령내기도 했다.

외국계 기업에서도 여성 임원의 활동이 활발하다.

컨설팅회사 엑센츄어의 이지은 전무는 지난해 9월 첫 여성 파트너이자 36세 최연소 임원 타이틀을 땄다. 수입차 업계에서는 최근 볼보코리아 이향림 사장이 PAG코리아 대표까지 겸직했고 BMW코리아 김영은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의 주역

삼성그룹 계열사의 한 임원은 최근 신입사원 연수과정에 참석했다가 여성들의 활약에 크게 놀랐다. 그는 “남자 놈들은 다 뭘 하고 있느냐. 이러다가는 나중에 회사에 여자들만 남겠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활동을 최대한 키워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주희 연구위원은 “1인당 국민소득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상위 16개국의 평균 수준으로 올리려면 앞으로 10년간 300만 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는 보고서가 나왔고, 이는 여성인력의 성장 없이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의사결정권을 갖는 관리직급에서의 여성인력 진출은 기업의 수익 증대와도 관련이 있다.

미국 100대 기업 중 여성 관리직 비율이 높은 상위 10개사는 동종(同種) 업종 평균과 비교해 약 12배의 주주 수익률을 낸 반면 하위 10개사의 수익률은 0.4배에 그쳤다.

기업문화의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기대도 높다. 삼성 LG그룹 등 국내 대기업과 주요 외국계 기업의 여성 임원들은 “의사결정권을 가진 여성이 늘어나면 기업의 투명성, 공정성, 다양성, 고객의 요구를 배려하는 21세기형 감성 경영 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래도 갈 길은 멀다

관리직 여성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도 전체의 2%를 못 넘는다. 철강, 중공업, 조선, 자동차 등 업종의 국내 대기업에서는 아직 여성 임원이 한 명도 없다.

한국여성개발원 양인숙 박사는 “여성 임원의 탄생은 지금까지 친족, 혈연인사나 소수의 ‘스타’ 발탁 형식이었다”며 “최근에야 늘어나기 시작한 여성 인력이 비중 있는 역할로 올라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산, 육아 및 가사 병행 등에 대한 제도적 문화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관리직에 오른 여성 상당수는 핵심에서 비켜난 부서에 배치돼 추가 승진이 쉽지 않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감성리더십…여성임원들 ‘외유내강’ 스타일▼

한국의 여성 임원들이 추구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

본보가 이번 취재를 위해 주요 기업 여성 임원 30명과 접촉한 결과 대부분 친근하고 부드러운 ‘감성 리더십’이라고 자신의 스타일을 평가했다.

‘나를 따르라’식 보다는 직원들이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원형, 코치형 리더라는 것.

일에는 철저한 카리스마형이라고 답변하면서도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푸근한 ‘복합형’이라는 부연 설명은 거의 빠지지 않았다. “남자들의 아킬레스힘줄인 자존심을 인정하고 감싸주는 리더십”이라는 답변도 나왔다.

LG전자 류혜정 상무는 “일을 잘못하면 눈물 쏙 빠지게 혼내지만 회사 내에서는 ‘누나’라고 부르는 후배가 많다”고 말했다. LG CNS 임수경 상무의 대답은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세심함을 양날의 칼처럼 쓴다”는 것.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정남희 이사는 “쉴 새 없이 대화하면서 남매나 자매 같은 관계로 만드는 ‘아줌마형’ 리더십”이라고 설명했다. 뉴욕생명 조정숙 본부장도 “부하들이 세심한 배려를 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누나형 혹은 언니형 리더십”이라고 자평했다.

제일기획 최인아 상무는 ‘플레잉 코치’를 키워드로 뽑았다. 최 상무는 “‘저 여자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더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리더십”이라고 덧붙였다.

일부는 남녀 리더십의 차이를 의식하고 싶지 않다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삼성전자 이현정 상무는 “나는 수백 명 삼성전자 임원 가운데 한 사람일 뿐”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들 여성 임원은 또 남성 중심의 조직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전략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코오롱 이수영 상무보는 ‘3C’ 전략을 세워 실천하고 있다. △솔직한 의사소통(Communicate) △상사와 동료를 고객처럼 만족시키기(Customize) △한 번 물면 이가 빠지도록 놓지 않는 근성(Challenge)의 세 가지다.

KT 권은희 상무는 ‘남들보다 1.5배 일한다’는 원칙을, LG CNS 설금희 상무는 ‘차별화 포인트’ 전략을 내세웠다. 삼성SDS 윤심 상무보는 ‘회사를 구하자(save the company)’ 정신을, LG전자 류 상무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고 설명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김승진 기자 sarafina@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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