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 女 취업 ‘보험 세일즈’로 뚫는다

  • 입력 2004년 12월 20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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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박대를 당해도 나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을 거절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고객이 몇푼의 이자가 아니라 보험컨설턴트의 신뢰를 구입한다고 말하더라고.” 억대연봉자 김정아 정현주 김지은씨(왼쪽부터)가 자신의 세일즈 경험을 나누고 있다. 박주일 기자
“문전박대를 당해도 나를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을 거절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 “고객이 몇푼의 이자가 아니라 보험컨설턴트의 신뢰를 구입한다고 말하더라고.” 억대연봉자 김정아 정현주 김지은씨(왼쪽부터)가 자신의 세일즈 경험을 나누고 있다. 박주일 기자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만큼 어렵다는 대졸여성 취업. 실제로 경영학 석사(MBA) 자격증도, 서울대 졸업장도 소용없었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한 것이 보험 세일즈. 노력한 만큼 팔렸고 팔린 만큼 수입이 보장됐다. 입사 2년 만에 연봉 1억 원이 꿈은 아니다. ‘청년실업’을 온몸으로 체험하고도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AIG생명보험 세일즈 매니저 김정아 김지은 정현주 씨가 자신들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보험 세일즈…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

김정아 씨는 9·11테러 직후 영국에서 MBA를 따고 국내외 회사의 문을 두드렸을 때 취업의 문이 높다는 것을 절감했다. ‘MBA 1등’이란 이력에 영어도 웬만큼 했지만 최종면접에서 번번이 떨어졌다.

정아 씨는 ‘결혼이나 하라’는 집안의 성화에 맞선을 봤고 상대방 남자의 친구를 통해 보험 세일즈를 알게 됐다. 정아 씨는 결혼 대신 보험 세일즈를 택했고 이 같은 상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지은 씨는 처음부터 미래가 보장되는 전문직이나 ‘범생이’가 선택하는 샐러리맨은 질색이었다. 그래서 3년 재수 끝에 국립대 치대에 두 군데나 합격했는데도 망설임 없이 건축을 부전공할 수 있는 서울대 공대를 선택했다.

대학 4학년 때 미국 뉴욕 맨해튼의 마천루를 본 지은 씨는 국내에서 공부해 세계적 건축가가 될 수 없다면 사업을 해 건축주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보험 세일즈는 금융권이고 경험의 폭을 넓히는 데도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졸업식 전날 아버지에게 보험 세일즈를 하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원래 아버지는 아이들 공부에 뭐라 말씀하시지 않는 편이었어요. 아버지는 한참 생각하시더니 ‘사회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허락하시더군요.”

기혼인 정현주 씨가 남편의 직장이 있는 충남 당진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학습지 교사가 전부였다. 마이너스통장의 빚을 갚으려 시작한 학습지 교사는 가르치는 일 못지않게 회원 수를 늘려야 하는 일이라 영업적 성격이 강했다. 여기에서 자질을 보인 정 씨는 남편의 권유로 보험 세일즈에 나섰다. 교직에 계시던 보수적인 친정 부모는 “보험을 팔려거든 집에 오지 말라”고 했지만 결국 정 씨의 지원자가 됐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잘하기는 어렵다

신참자들은 지인 영업에 매달리기 마련. 정아 씨도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했으나 입사 8개월이 되자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매달린 것이 인터넷광고와 홈페이지 운영. 홈페이지에는 자꾸 새로운 정보를 올려 고객을 끌고 고객의 문의에는 신속하게 답변했다.

지은 씨 역시 조그마한 인연만 있으면 보험가입을 권했다. 미국여행 때 비행기표를 구입한 여행사 주인이며 휴대전화를 구입했던 휴대전화 가게 주인도 공략대상이었다. 한 사람과 계약에 성공하면 그 사람 가족구성원의 계약을 받아오는 것이 지은 씨가 노력을 덜 들이고 성과를 높일 수 있었던 비결.

대학이나 직장생활을 서울에서 하지 않은 정 씨가 당진에서 매달릴 곳은 없었다. 정 씨는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지만 ‘소개’에 목숨을 걸었다. 학습지 회원 학부모들의 소개가 밑천이었다. 당진에서 충남 전역으로, 수도권에서 서울로 소개가 꼬리를 물었다.

“대학시절 그룹사운드 활동할 때 공연티켓을 파는 것은 제 담당이었어요. 모두들 영업에 소질이 있다고 했지만 결혼 전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지요. 결혼 후 두 번째 직장에서 영업의 매력을 느꼈고 영업의 기본도 익혔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영업의 기본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 기본이 충실하면 고객에게 신뢰를 주고 판매로 연결된다. 학습지 교사 시절 학부모들은 정 씨를 ‘실력 있는 선생님’으로 인식했다.

“학부모들은 제가 밤 12시에 방문해도 ‘선생님 바쁘시니까 얼른 일어나라’며 아이를 깨워요. 미용실이 값이 비싸고 손님이 많더라도 미용사가 실력이 있으면 손님은 기다리잖아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서비스를 받으려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보험업도 마찬가지고요.”

#대졸여성 취업 세일즈로 풀어라

정 씨가 학습지 회원 가입자 월 100명 기록을 세워 월 1200만 원의 수입을 올리고도 보험업으로 전업한 것은 ‘물리적인 한계’를 느꼈기 때문. 주말을 반납하고 밤늦게까지 회원관리를 했지만 수입이 더 이상 늘지는 않았다.

정 씨는 다른 대졸여성들에게도 “학벌보다 능력에 따라 대우해 주는 영업직에 도전해 보라”고 권한다. 특히 보험영업은 다른 영업보다 수입 면에서 월등하고 발전가능성은 무한대라는 것이다.

“세일즈가 두렵다는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때 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본인이 가지고 있다’고 대답하지요.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무너진 상황에서 프로만이 살아남고, 자신감과 긍정적 사고만 있다면 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지은 씨는 세일즈가 첫 직업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인맥을 만들 수 있고 경험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지은 씨는 “나 자신도 보험 세일즈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일이기 때문에 보람을 느낀다”고 주장했다.

1남 2녀의 막내로 보험 세일즈를 시작하기 전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안했다는 정아 씨는 취업을 못하는 이유는 외부환경보다는 본인에게 있다고 단언한다. 우선 부딪치고 다음엔 ‘다걸기(올인)’하라는 것이 정아 씨의 주장.

정아 씨는 “보험 세일즈는 상담과 관리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여성들에게 적합하다”며 “더욱이 남녀차별이 없어 얼마든지 실력발휘를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최근 다른 10명의 세일즈맨들과 함께 자신들의 보험 세일즈 기법을 담은 ‘평범한 사람들이 세일즈로 돈 버는 법’이란 책을 출간했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3인 프로필▼

▽김정아=△32세 △숙명여대 교육학과 졸업, 영국 맨체스터 샐퍼드대 MBA △중학교 교사, 학원 강사 △2002년 1월 입사 △2003년 12월 세일즈 매니저로 승진, 현재 팀원 15명 관리 △연봉 1억 원

▽김지은=△27세 △서울대 화학공학과 졸업 △경력 없음(대학 졸업 직전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 △2002년 4월 입사 △2004년 8월 세일즈 매니저로 승진, 현재 팀원 10명 관리 △연봉 1억 원

▽정현주=△33세 △경남대 무역학과 졸업 △한보철강 공채, 학습지 교사 △2002년 5월 입사 △2004년 8월 세일즈 매니저로 승진, 현재 팀원 11명 관리 △연봉 1억7000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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