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銀, 대출관행 탈피 실험중… 기술평가 자문단 첫 회의

  • 입력 2004년 11월 9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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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력평가자문단’ 회의에서 자문위원들이 신용 대출을 신청한 SBB 이부락 사장에게서 회사 및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신원건기자
5일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력평가자문단’ 회의에서 자문위원들이 신용 대출을 신청한 SBB 이부락 사장에게서 회사 및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신원건기자
“평범한 기술이라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남이 못하니까 도전했다.”(SBB 이부락 사장)

“기술은 그렇다 치고 판매처는 있나, 언제 양산(量産)할 수 있나, 경쟁자는 없나.”(우리은행 심사역들)

5일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회의실에서 ‘중소기업 기술력평가자문단’의 첫 회의가 열렸다.

황영기(黃永基) 우리은행장은 담보 위주의 대출관행에서 탈피하기 위해 시중 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8월 중소기업의 기술력을 평가하는 자문단을 발족시켰다.

우리은행 대출 실무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한 해 매출이 70억원인 중소기업이 담보 없이 기술력만 믿고 신용으로 21억원을 빌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돈을 빌린다’=SBB는 동력을 전달하는 매개체인 베어링 제조업체다. SBB의 베어링은 극저온 진공 자장(磁場) 등 특수 환경에 투입되는 기계에 들어가고 비금속 무기질 재료인 세라믹을 원료로 하는 점에서 일반 베어링과 다르다.

이 회사는 반도체 생산라인의 로봇용 베어링을 주로 만든다. 최근 인공 고관절용 베어링도 개발해 대학병원에서 실험 중이다.

이 사장은 “지금 생산시설로는 양산이 어려워 다른 부지에 공장을 신축하기 위해 대출을 신청했다”며 “10년 이상 기업을 경영하며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공관절 수입액만 연간 2000억원을 넘는다”며 “부품 선진국인 일본에 수출하는 것도 추진 중이니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기술은 괜찮은데 판로는?’=우리은행 업종별 전문 심사역들은 SBB의 기술력에 공감하면서도 판매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고령화로 인공관절 수요는 증가하겠지만 이제 임상실험 단계다. 언제 판매할 수 있나?”(A 심사역)

“세라믹 베어링이 좋은 것은 안다. 가격이 비싸 못쓰고 있을 뿐이다. 판로 확보는 돼있나? 경제성은 자신하나?”(B 심사역)

“수출 때 국내 출원은 보호받지 못한다. 외국에서 카피하면 어떻게 기술을 보호할 것인가?”(C 심사역)

이에 대해 이 사장은 “현장만 뛰느라 수요 예측과 보고서 작성에는 서투르다. 숫자로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원가를 10%만 낮추면 수요는 2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회의가 끝난 뒤=이 사장은 “시험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고 털어놨다.

기술자문단 멤버인 기술신용보증기금 정문교 박사는 “부품 소재의 90% 이상을 일본에서 수입하는 상황에서 중소업체가 부품 개발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라며 “매출 70억원도 상당한 성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세라믹 베어링은 경제성만 해결되면 상당히 유망한 소재 분야라는 것.

우리은행 중기전략팀 이동연 부장은 “최근 경기침체로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지만 유망한 중소기업을 발굴해 국가경제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이번 회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은행측은 SBB에 대한 자문단의 대출심사 검토 의견서를 받은 뒤 여신협의회 안건으로 올려 다음주 중 대출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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