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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0월 31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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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옷 만드는 일이 제일 재밌었어요. 나팔바지가 유행한다 하면 직접 옷을 뜯어 만들어봐야 직성이 풀렸어요.”
고교졸업 후 양복점 보조로 처음 업계에 발을 디뎠고 1970년부터는 부산에서 맞춤 양복점을 운영했다. 83년 어느 날 한 신문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삼성물산 SS패션에서 양복 기술자를 뽑는다는 것. 당시 삼성물산은 기성복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갤럭시’ 출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 꿈은 전국 1인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주문복은 아무리 해도 그 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었죠. 기성복에서 꿈을 이루자고 생각했습니다.”
최고는 평범한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출근도장을 제일 먼저 찍어야 기분이 좋았습니다. 매일 새벽 6시면 연구실에 나와 선진국 양복들을 분석하고 연구, 또 연구했습니다.”
결국 금 실장은 갤럭시를 한국의 대표적 기성복으로 키워냈고 92년에는 국가공인 양복 명장(名匠)을 획득하고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명장’은 한 분야에서 최고수준의 기능을 가진 사람에게 국가에서 주는 자격. 기성복 업계에서는 현재까지도 금 실장이 유일하다.
하지만 국내 최고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94년 그는 이탈리아로 떠났다. 현지 언어를 익히고 세콜리 패션스쿨에서 자식뻘 되는 젊은이들과 함께 앉아 패턴(의상 설계)을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그는 2001년부터 배재대 의류패션 학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일모직 산하 삼성패션연구소 봉제기술연구실에서도 후진을 키우고 있다.
“이제 목표는 평생 배우고 익힌 양복 기술과 노하우를 집대성해 제대로 된 신사복 교과서를 완성하는 것입니다. 세계적 명품을 만드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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