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카드 정태영 사장 “광고 결정때 계급장 떼고 토론”

  • 입력 2004년 8월 1일 19시 04분


현대카드·캐피탈 최고경영자인 정태영 사장이 최근 침체된 카드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 사장은 금융회사로서의 신뢰를 중시하면서도 직원들에게 차별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제공 현대카드
현대카드·캐피탈 최고경영자인 정태영 사장이 최근 침체된 카드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 사장은 금융회사로서의 신뢰를 중시하면서도 직원들에게 차별성과 자유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제공 현대카드
“우리 집사람이 한 달에 카드를 얼마나 쓰는지 알 수 있을까요?”

5월 어느 날 정태영(丁太暎·44) 현대카드·캐피탈 사장이 복도를 지나다 던진 이 질문에 “한 번 알아보겠다”고 대답했던 현대카드의 한 과장은 한바탕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대답을 들은 정 사장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지더니 “곧장 사표를 써서 내 방으로 갖고 오시오”라고 했던 것.

느닷없는 사표 요구에 큰 충격을 받은 과장에게 정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사장 부인도 고객 아닙니까. 사장이 요구한다고 고객의 개인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금융회사 직원이 할 일입니까. 이번만은 넘어가겠지만 다음은 절대 아닐 겁니다.”

정 사장이 지난해 10월 사장에 취임하면서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 내걸었던 윤리경영의 실천이념 ‘무(無)관용정책(Zero Tolerance Policy)’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정 사장이 고지식하고 까다로운 최고경영자(CEO)는 아니다. 정 사장은 올해 초 기업이미지 통합(CI) 작업을 하면서 ‘개성과 차별성, 자유로움(Individuality, different & be free)’을 현대카드의 새로운 콘셉트로 제시했다.

이에 따른 변화는 현대카드의 광고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살인의 추억’ ‘올드 보이’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한국 영화의 명장면을 패러디화한 M카드 광고, 미국 대통령 부시, 영국 왕세자 찰스, 일본 고이즈미 총리 등을 쏙 빼닮은 대역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어설프게 춤을 춰 화제가 됐던 미니M카드 광고 등 현대카드는 잇따른 화제작을 냈다.

정 사장은 광고를 결정하는 날이면 자신과 광고담당 임원과 말단 직원, 광고기획사 직원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계급장을 떼고’ 공개토론을 한다.

정 사장은 “광고건 상품이건 한 단계씩 보고 단계를 거칠 때마다 창의성은 줄고 무난한 것만 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얼룩말 무늬의 현대카드 전용차량을 탄 젊은 남녀 직원 한 쌍이 새로 가입한 고객을 직접 만나 카드를 전달하는 ‘카드배송 시스템’ 등도 정 사장의 아이디어.

정 사장은 현대카드의 조직문화도 철저히 수평적으로 바꿔가고 있다. 정 사장은 매달 한 번씩 현대카드의 전 임직원에게 ‘월별 보고서’를 보낸다. 한 달 동안 회사에서 벌어진 중요한 일과 정 사장 자신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적어 보고하는 것.

또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에는 전 임원이 모여 앉는 딱딱한 임원회의가 없다. 대신 사장과 임원, 부서장들이 토의해야 할 사안만 갖고 토론하는 ‘티 미팅’이 일주일에 한 번씩 열린다. 폐쇄형으로 운영되던 임원실의 벽과 문은 모두 유리로 바뀌었다.

이 밖에도 매달 둘째 주 금요일에는 직원이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호프데이’ 행사를 열어 사장과 평사원이 생맥주를 마시며 대화하고 있다.

튀는 감각과 넘치는 에너지의 소유자인 정 사장이지만 아직까지 대외활동은 조심하고 있다. “경영 실적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정 사장의 의지 때문이다.

정 사장은 종로학원 정경진 회장의 맏아들이자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둘째 사위이다.

5월부터 전업(專業) 카드회사 중에서 처음으로 현대카드의 월별 실적이 흑자로 전환돼 정 사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았으며 조만간 GE캐피탈과의 전략적 제휴를 발표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외활동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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