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업에 ‘사회기금’ 요구 무리다

  • 입력 2004년 6월 13일 18시 43분


현대자동차 노조가 회사에 요구하는 사회공헌기금 출연은 임금협상의 의제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혼동하는 일이다.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4개 완성차 노조는 당기순이익의 5%로 기금을 조성해 소외계층 지원, 비정규직 보호, 자동차 산업발전을 위한 노사공동 연구기금으로 쓰겠다고 한다. 노조가 조직이기주의를 넘어서 소외계층과 비정규직에 관심을 쏟는 것을 그 자체로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소외계층 지원은 기업이 맡을 일은 아니다.

기업은 투자 확대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수출하고, 세금 내는 것만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역할이 크다. 2002년 국가 총세수에서 자동차 관련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8.2%나 된다. 자동차의 올 1∼4월 수출 기여율은 8.8%였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세계시장에서 1900만대나 공급 과잉을 빚을 만큼 경쟁이 치열해 연구개발(R&D) 투자를 소홀히 했다가는 살아남기 어렵다. 더욱이 자동차회사마다 경영상황과 재정상태가 다른데도 일률적으로 5%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경기 부진과 극심한 내수 침체에도 불구하고 경제의 성장동력이 활력을 잃지 않은 데는 생산규모와 기술력에서 세계 6위인 자동차산업의 기여가 컸다. 그러나 노사관계만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노사관계의 안정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현대차 노조가 사회공헌기금 출연이나 비정규직 임금인상처럼 개별기업 차원에서 논의하기 어려운 사안을 놓고 협상결렬을 선언하며 쟁의행위에 돌입하는 것은 아무리 따져 봐도 명분이 약하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기업에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떠맡겨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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