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난으로 서민주택 경매 급증

  • 입력 2004년 5월 17일 17시 44분


경기 수원의 A씨는 병원비를 대려고 감정가 2000만원 짜리 13평형 빌라를 담보로 사채 900만원을 빌렸으나 갚지 못했다. 최근 경매에 넘겨진 그 빌라에는 병원비 500만원에 대한 저당권도 설정돼 있다.

서울 미아동에 사는 B씨는 은행 빚 1500만원을 갚지 못해 23평형 빌라를 경매로 넘겨야 했다. 카드빚과 자동차할부금이 결정적이었다. 감정가 1억2000만원인 그 빌라는 3월 말 6950만원에 낙찰됐다.

최근 매물로 나온 서울 명동의 7평짜리 회전초밥 점포의 권리금은 1억원. 1년 전에는 1억5000만원이었다.

서민 경기가 바닥을 헤매면서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 물건이 급증하고 핵심 상권마저 상가 권리금이 떨어지고 있다.

17일 경매 정보업체 디지털태인에 따르면 2002년 이후 경매 물건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특히 올 들어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물건 수가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지역의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물건 수는 지난해 상반기(1~6월) 월평균 500건에서 지난해 하반기(7~12월) 647건, 올 들어 4월까지 978건으로 크게 늘었다. 전국의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물건은 이 기간에 월평균 3394건에서 7664건으로, 전국의 경매물건 총수는 2만4698건에서 3만2918건으로 급증했다.

디지털태인 이영진 부장은 "경기가 나쁠 수록 경매 물건이 늘며, 특히 다세대 및 연립주택 경매물건 수 증가는 서민경제의 침체를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2~3년간 다세대, 다가구와 연립주택이 연간 20만 가구씩이나 공급되면서 빈 방이 늘고 임대료가 떨어져 건축주나 임대사업자들이 파산하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서민 체감경기의 또 다른 바로미터인 상가 권리금도 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의 명동, 목동5거리, 이대 앞, 테헤란로, 강남 학원가 등 핵심 상권의 상가 권리금이 올 초부터 밀리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의 조사 결과 수도권지역 25개 주요 상권의 상가 권리금은 1·4분기(1~3월)동안 전 분기에 비해 평균 3.7% 하락했다.

권리금 하락세는 4월 들어 서초구 양재동, 동대문구 청량리동 등 서울 부도심권이나 일산신도시 주엽동 마두동 등 일부 신도시 중심지역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상가114 유영상 투자전략연구소장은 "서민층의 지갑이 얇아지면서 막연히 유동인구만 바라보고 장사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면서 "고정적인 배후상권이 결합된 내실 있는 상권이 아니라면 당분간 권리금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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