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의견 있나요?” “…”은행 사외이사 여전히 ‘예스맨’

  • 입력 2004년 3월 22일 18시 43분


“반대의견이나 비판적인 의견이 있어도 대놓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완곡하게나마 의견을 말하면 의사진행발언 정도로 취급되는 셈이죠.”

지난해 모 회사의 인수합병 문제로 홍역을 치른 A은행 사외이사를 지낸 B씨. 그는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면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이사회의 입장은 대주주의 뜻에 따라 방향이 섰는데 사외이사가 ‘남의 회사’에 소신성 발언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

B씨는 “대주주가 결정하면 그 결정을 따라주는 게 아직까지 사외이사의 미덕인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국내 시중은행 사외이사 대부분은 B씨의 경우처럼 대주주의 거수기 노릇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각 은행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외이사 활동내용에 따르면 시중은행 가운데 지난해 사외이사가 이사회에서 반대 의견을 밝힌 은행은 단 두 곳에 그쳤다.

우리금융지주는 작년에 14차례 이사회를 열어 44건의 안건을 처리했지만 사외이사가 반대 의견을 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신한금융지주 역시 10차례의 이사회에서 29건을 처리하면서 사외이사들이 모두 찬성표를 던졌고, 하나은행도 11차례의 이사회에서 단 한 건의 반대 없이 33건의 안건을 처리했다. 신한지주로 넘어간 조흥은행은 이사회를 12차례나 열었지만 은행 매각 건을 포함한 43건이 사외이사들의 찬성 의견 속에 무난히 통과됐다.

반면 국민은행이 13차례 이사회에서 34건을 처리하면서 3명의 사외이사가 반대의견을 내놓았고 한미은행은 12차례의 이사회에 상정된 45건 중 2004년도 경영계획안에 대해 사외이사 전원이 반대 의견을 내놓은 게 고작이다.

C은행의 한 사외이사는 “회사의 깊숙한 사정을 알 수 없는 데다 현장경험도 없어 ‘예스맨’ 역할에 머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면서 “종종 반대의견이나 이견이 제기돼도 회사측에서는 회의록에 남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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