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성과주의’ 속앓이…“연봉격차 클수록 팀워크 추락”

  • 입력 2004년 3월 2일 18시 47분


성과주의 인사가 강조되면서 조직 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의 부작용 완화가 인사팀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성과주의는 생산성 향상, 실력주의 정착 등 긍정적인 효과가 적지 않다. 하지만 상대적인 박탈감, 동료간 지나친 경쟁, 업무 노하우의 전수 기피, 단기적인 성과 치중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거나 도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들이 천편일률적인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했다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기업문화와 산업 특성에 맞게 시스템을 보완하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심화되는 기업 내 위화감=1월 말 삼성전자는 목표를 초과한 성과에 대해 보상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다. 연봉과 15개 사업부서마다 달리 주어진 성과급까지 감안하면 부장의 경우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더라도 연봉은 2배까지 차이가 난다.

하나은행 투자금융부문의 경우 이익금의 10%를 인센티브로 지급하기 때문에 일부 직원은 경기가 좋을 때는 일반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성과급을 챙겼다.

이제 입사 동기라도 직급이 차장, 부장, 임원까지 퍼져 있는 사례를 기업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연공서열 인사 관행이 깨지고 발탁인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해고가 쉽지 않은 상태에서 최하위등급 평가자의 불만을 처리하는 것도 문제.

모 그룹 인사팀 관계자는 “성과주의 인사는 최하위 등급을 잇달아 받는 직원을 퇴출시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한국에서는 해고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하위등급을 받은 뒤 업무 의욕을 잃은 일부 직원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대응=의류업계에서 성과주의를 가장 먼저 도입한 이랜드는 인사제도를 매년 조금씩 수정하고 있다.

성과급 상한을 기본급의 1100%로 정하고 성과급을 브랜드 사업부별로 주고 있다. 지나치게 위화감을 주는 규모의 성과급과 개인 성과 위주의 보상은 팀워크를 해친다고 판단한 것. 또 지식 전수활동을 평가항목에 포함시켜 업무 노하우 전수를 장려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작년부터 평가 및 보상의 상하 격차를 크게 줄였다.

현대차 관계자는 “연봉 격차가 커지면서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이의제기가 많아지고 조직 내 위화감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회사 내 핵심인재를 내부적으로 선정해 관리하지만 임원이 되기 전에는 공개하지 않는다. 핵심인재들이 공개를 부담스러워하고 동료로부터 지나친 견제를 받기 때문.

최하위 등급 고과자의 수를 줄이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퇴출이 어려운 상태에서 최하위 등급 고과자의 수가 많으면 조직 내 분위기를 해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외국 사례=1997년 일본 사와이제약은 과장급 이상 관리직을 대상으로 연봉제를 도입했다가 2000년 철회했다. 직원들이 개인 성과만을 중시해 조직력이나 팀워크가 약화되는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후지쓰 역시 성과 위주의 인사를 완화했다. 성과 위주의 제도를 성급하게 도입하는 바람에 조직 내 분위기가 너무 삭막해지고 직원들이 단기적인 목표 달성에만 치중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판단에 따른 것.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팀들은 최고 연봉선수 영입 경쟁을 자제하고 있다. 팀 내 선수들의 연봉 격차가 클수록 승률이 떨어진다는 연구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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