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비 '50만원 쪼개기' 편법 속출

  • 입력 2004년 1월 25일 18시 41분


올해부터 한번에 50만원 이상 접대를 할 때 접대 목적과 접대 대상자의 이름을 기록해야 하는 ‘접대실명제’가 도입되면서 이를 피해가기 위한 갖가지 편법이 성행하고 있다.

모 제조업체의 영업담당인 K부장은 거래업체와의 약속을 앞둔 전날에 단골 일식집을 찾아가 48만원짜리 영수증을 법인카드로 끊어놓았다. 다음날 일식집에서 접대한 식사비가 90만원 가까이 나왔지만 42만원만 계산했다.

K부장은 “접대 대상의 실명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에게는 결례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한 건설업체의 임원은 “앞으로 골프접대를 할 때에는 협조가 가능한 하도급 업체와 공동으로 비용을 계산하는 방법을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통상 4명이 골프를 하면 1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지만 이처럼 ‘2인 1조’로 계산을 하면 ‘50만원 상한선’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

술자리도 마찬가지다. 50만원까지는 영수증을 받지만 나머지는 일단 외상으로 달아놓았다가 나눠서 계산하면 접대실명제를 피해갈 수 있다. 기업들은 대개 단골 유흥업소를 갖고 있는 만큼 최근 이 같은 방법이 가장 많이 쓰인다고 유흥업소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그러나 이 같은 편법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룸살롱 등과 같은 향락업소는 접대실명제 실시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전망.

한 대기업 임원은 “올해부터 골프접대를 하면서 상대방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룸살롱 접대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며 “앞으로 문을 닫는 룸살롱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접대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서울 강남의 룸살롱과 단란주점 등 대다수 고급 유흥업소의 매상이 뚝 떨어져 폐업을 걱정하는 업소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평소 절반 이상을 차지하던 법인카드 고객들이 새해 들어 거의 발걸음을 끊어 매상이 반으로 준 업소도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

일부 룸살롱은 ‘50만원 한도’를 피해가기 위해 일정 구역 내 다수의 업소들이 연대하거나 한 업소가 복수의 가맹점을 등록해 놓고 한 건의 신용카드 매상을 여러 장으로 나눠 끊는 방법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올해부터 민간기업의 접대비처럼 공무원도 50만원 이상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때에는 사용 목적, 일시, 장소, 대상 등을 기록한 증빙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재정경제부는 25일 건당 50만원 이상의 업무추진비를 사용할 때는 주요 대상자의 소속과 성명 등을 증빙서류에 반드시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2004년 세출예산 집행지침’을 확정해 각 부처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업무추진비란 △식사비와 회의비 등 일반 업무비 △부처간 간담회, 직원 사기진작 등 업무와 간접적으로 관련된 관서(官署) 업무 수행비 △축의금, 체육대회비 등 기관인원에 따라 배정되는 정원 가산금 등 3가지로 민간의 접대비와 거의 같은 성격이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김광현기자 kkh@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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