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포럼]박영철/韓日 FTA, 과정이 중요하다

  • 입력 2003년 12월 28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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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시작했다. 앞으로 2년 내에 체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제 한일 양국은 새로운 협력과 경쟁의 장을 열기 시작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일 FTA는 한국의 내수시장이 거의 10배로 커지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본의 앞선 기술을 습득하기가 쉬워지며 모든 부문에서 기업의 체질이 개선될 수 있다. 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이 향상되는 등 경제의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다.

▼ 동아시아 경제주도권 노리는 일본 ▼

그러나 불확실한 경제 논리만으로 FTA를 추진할 수는 없다. 특히 일본이 무역자유화의 차원을 넘어 두 나라 경제의 전반적인 통합을 제안해 올 때 한국의 대응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두 나라 사이의 불행했던 과거를 지울 수 없는 일반 국민의 정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중일 3국의 정치적, 경제적 역학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경제통합이 가져올 문화의 충돌과 경제적 자주성의 약화도 우려해야 한다.

한일 양국은 FTA를 추구하는 목적과 의도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 경제적인 이득에 집중하는 반면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경제적인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전략의 한 축으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와 FTA를 논의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밀려서는 안 된다는 국익의 논리가 한일 두 경제를 통합해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의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 FTA의 상대로서 일본을 우선해야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동아시아에서 FTA의 파트너를 찾는다면 한국의 우선 선택은 일본이라는 것이 일본 지식인들의 주장이다. 한국이 첨단기술을 도입해야 하며 한미일 안보동맹의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오판이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중-미 관계가 적대적인 대치에서 경쟁적인 파트너로 바뀌고 있는 커다란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이 일본의 일방적인 편 가르기에 참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다수 일본인의 시각으로 볼 때 한국은 아직도 후진국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과의 대등한 통합이 달갑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 두 나라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불신의 벽이 쉽게 허물어질 것 같지도 않다. 일본과 같은 큰 경제 규모의 나라와 자유무역의 길을 터 놓으면 한국 같은 작은 나라는 일본의 정책 제도 규범 관행을 수용해 적응할 각오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국내 이익집단의 반대는 도외시한다고 해도 이 모든 구조적인 걸림돌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물론 일본도 한국과의 FTA 협상이 쉽게 타결되리라고 믿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적극성을 보이는 것은 한일 FTA 협상을 선언함으로써 일본이 동아시아 경제의 주도권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해 당분간 한중 양국간의 관계를 현 상태에서 묶어 놓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의 협상이 장기화된다면 그것은 중국과의 경쟁에 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의 적극성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은 한일 FTA의 대안으로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의 자유무역지대 설립에 주력해 중국을 견제하려 할 것이다. 결국 일본의 입장에서 볼 때 한일 FTA는 협상의 결과보다 시작이 더 중요한 것이다.

▼자주적 위치-역할 확보해야 ▼

일본에 시작이 중요하다면 한국에는 과정이 중요하다. 2년 내에 FTA를 체결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도 당위성도 없다. 일본이 무엇을 원하고 요구하든 간에 한국은 일본의 거울에 그 모습을 비춰보면서 일그러진 골격이 있다면 고쳐 가는 여유를 갖고 협상을 이끌어 가면 된다. 그리고 일본과의 경제 통합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며 이러한 기대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양보할 준비가 돼 있는가를 숙고해 봐야 한다. 아울러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대국이 펼치는 주도권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자주적인 위치와 역할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일 FTA를 서둘러야 할 나라는 일본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 일본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으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박영철 고려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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