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그룹 금융사업서 잇단 쓴잔 왜?

  • 입력 2003년 12월 25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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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그룹이 금융사업에서 잇달아 손을 떼고 있다.

LG그룹이 카드사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LG카드와 LG투자증권의 경영권을 포기하기로 한 데 이어 CJ도 최근 푸르덴셜에 제일투자증권과 제일투자신탁운용의 경영권을 넘겼다.

현대 대우 SK 쌍용 등도 마찬가지다. 금융업에서 쌓인 부실은 제조업 기반의 모기업 경영으로 옮겨져 그룹 전체가 망가지는 도화선 역할을 했다.

금융전문가들은 “제조업 마인드의 공격경영과 무리한 확장경영이 성격이 다소 다른 금융업 경영 실패의 화근(禍根)이 됐다”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는 이런 시각이 ‘산업자본과 금융자본간의 차단벽을 높이는 논리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자본조달창구에서 모기업 흔들기의 주역으로’=1997년 삼성그룹에서 법적 분리작업을 마친 CJ는 그룹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그해 9월 제일투자신탁(99년 1월 제일투자증권으로 전환)을 인수했다. CJ 관계자는 “금융회사를 계열사로 둘 경우 자금조달과 운용 측면에서 유리한 점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CJ는 99년부터 2002년까지 총 792억여원에 이르는 제일투자증권 관련 ‘지분법 평가손실’을 봤다. CJ는 2001년 식품 엔터테인먼트 등을 그룹 핵심사업으로 정하고 금융업에선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LG그룹의 금융사업 실패도 리스크 관리가 중요한 카드사 경영에 무리한 외형경쟁을 주입하면서 빚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소비욕구가 크나 소득이 적은 20, 30대를 ‘목표 고객군(群)’으로 정한 이헌출(李憲出) 전 LG카드 사장의 공격경영은 한때 큰 외형적 성과를 올렸지만 결국 그룹에 부담을 주는 ‘금융업 실패’의 도화선이 됐다.

금융의 문외한이었던 이익치(李益治) 전 현대증권 회장이 99년 ‘바이 코리아’ 펀드상품을 내놓으면서 투신업계엔 유례없는 수신경쟁이 펼쳐졌다. 그의 불도저식 경영수완이 금융분야에서도 통하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무리한 수신경쟁은 고객들이 투신업계를 등지는 빌미를 제공했다.

99년 SK증권 유상증자를 둘러싼 SK그룹과 JP모건간의 이중계약사건은 SK 계열사에 1112억원의 손실을 끼쳤다. 이 밖에 대우증권 대우캐피탈 한국종금 다이너스카드 등 대우그룹의 금융계열사들은 모두 부실누적에 따라 청산 또는 매각되거나 채권단 주도로 새 주인을 찾고 있다.

▽무리한 공격경영이 화근=외환위기 이전에는 금융회사가 대주주(오너)의 사금고(私金庫)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편법대출 등을 통해 다른 부실계열사를 지원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었다. 보험 종합금융 저축은행 등 수신 기능이 있는 금융회사일수록 제조업체 인수대상 목록의 맨 위쪽에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그룹 자금조달 창구 역할을 했던 그룹 계열 금융회사는 대부분 시장에서 퇴출됐다. 모기업의 외화자금 조달창구였던 종금사와 계열사 자금 지원에 자주 동원되던 생보사들은 상당수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원기(李元基) 메릴린치증권 전무는 “대부분의 대기업은 성장산업의 환상을 간직한 채 금융업에 진출한다. 일사불란한 제조공정을 밀어붙이면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안재욱(安在旭) 경희대 경제통상학부교수는 “위험관리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금융업에서 위험을 방기한 채 확장경영에 몰두한 게 실패의 원인”이라며 “이런 비합리적인 경영행태는 시장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은?=주요 대기업의 잇단 금융업 실패가 산업자본의 금융업 진출 반대 논리로 이어질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도 적지 않다.

박원암(朴元巖) 홍익대 경제학교수는 “은행업에 외국자본 진출이 거세지면서 역(逆)차별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산업자본의 은행업 진출은 위험관리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영기(黃永基) 삼성증권 사장은 “대기업을 제외할 경우 외국자본에 맞설 수 있는 국내 토종자본은 별로 없다”며 “편법 불법을 감시하는 모니터링 시스템 정비가 오히려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강운기자 kwoon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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