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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21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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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글로벌 거래은행들은 회계법인에 제출하는 ‘채무잔액증명서’에 외화 외상매입채무(유전스) 잔액을 ‘0원’ 또는 빈칸으로 남겨 뒀다. SK글로벌에서 수천억원씩 받을 돈이 있는데도 회계법인에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아 분식회계를 눈감아 줬다는 뜻이다.
채무잔액증명서는 회계법인이 보낸 반송우편으로 보내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를 SK글로벌 직원에게 내줘 채무잔액증명서를 위조하는 데 ‘도움’까지 주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30대 그룹의 계열사들이 은행 창구에 와서 채무잔액증명서를 직접 내달라고 하면 거절하지 못하는 게 관행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은행이 거래 기업의 분식회계를 방조하는 것이 한두 회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SK글로벌 분식회계는 결국 은행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 회사 채권이 부실화되면서 은행들은 올 상반기에 2조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했다.
당연히 은행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은행권의 상반기 순이익은 총 467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3조590억원에 비해 86%나 줄었다. SK글로벌 사태는 카드 부실과 함께 은행 이익 격감의 가장 큰 원인이 됐다.
눈여겨봐야 할 점은 또 있다. 거래기업의 분식회계를 방조한 결과에 따른 은행의 실적 악화 부담을 고객들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올 하반기 들어 벌써 예금금리를 두 차례나 낮추었다. 반면 대출금리는 시장금리와 연동해서 움직이는 일부 대출상품을 제외하면 인하하지 않았다. 예금금리와 대출 금리의 차이에 따른 이익(예대마진)으로 실적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꼼수’라고 비판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각종 수수료도 올리고 있다. 인터넷뱅킹 수수료를 인상하는 은행이 있는가 하면 ‘취급 수수료’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는 고객에게서 선(先)이자를 떼기도 한다.
“은행들은 잘못된 경영의 책임을 고객에게 전가하기보다는 고비용 경영구조를 개선하는 데 신경 써야 할 때입니다.” 서울YMCA 신용사회운동사무국 서영경(徐瑩鏡) 팀장의 이 같은 ‘질타’에 대해 각 은행은 어떤 논리로 반박이나 해명을 할 수 있을까.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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