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서울시 도시계획국장 지낸 손정목씨 책 펴내

  • 입력 2003년 8월 18일 18시 47분


서울 청계천 고가도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워커힐 내왕을 쉽게 하기 위해 건설됐다,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은 원래 핵무기 개발기지가 들어설 자리였다, 서울 중구 소공동의 지하도는 전시에 서울 시청을 옮겨 놓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1970년대에 7년간 서울시 도시계획국장과 기획관리관 등 고위직을 역임하고 20년 넘게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을 지낸 손정목(孫禎穆·75) 전 서울시립대 교수의 증언이다.

손 전 교수는 18일 출간한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통해 60년대부터 현재까지 서울에서 시행돼 온 도시계획 과정과 뒷이야기들을 5권 1668쪽 분량으로 생생히 전하고 있다.

서울 도시계획의 산증인인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각종 자료와 관련자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실명을 거론하며 반세기 가까운 도시계획사를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 -김미옥기자

그중 저자가 필독을 권하는 대목은 강남 개발 시절 정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청와대와 서울시가 나서서 땅 투기를 한 에피소드.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의 지시에 따라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이 강남의 장래성 있는 땅들을 사서 되팔고 했다는 것. 저자가 1970년 당시 도시계획과장으로부터 나중에 들은 이야기.

“경호실장이 어느 곳이 가장 장래성이 있느냐고 했고 ‘탄천을 경계로 서부지역 일대(현재 강남구)’라고 답했더니 그쪽 땅을 사모으라고 했다. 2주일 후 시장실에서 연락이 와서 갔더니 ‘제일은행 전무실에 가면 돈을 줄 테니 받아와서 우선 그 돈으로 땅을 사모으라’는 것이었다….”

손 전 교수는 “강남의 땅 투기 사건은 청와대 경호실장과 서울시장이 장차 있을 대선에 대비해 박 대통령에게 목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시작한 것”이라며 “한 손으로는 도시개발을 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투기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저서에는 남산 경관을 가리는 프라자호텔을 짓게 된 사연, 특별법을 3개나 만들면서 을지로 1가에 롯데호텔 건립허가를 내주게 된 과정, 양천구 목동지구 개발에 건축가 김수근이 개입하게 된 배경 등이 담겨 있다.

손 전 교수는 “20년 넘게 도시계획에 관여하며 개발정보를 3년 먼저 알았지만 천벌을 받을까 두려워 개인적으론 땅 투기를 하지 않았다”며 “평당 300원일 때 강남 땅을 500평쯤 샀더라면 주색에 몸 망치고 일찍 죽었을 것”이라고 웃었다.

저자는 현재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35평형 아파트에 살면서 서울시립대 연구실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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