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행복한 세상]"난 미래에 산다" 전자 신제품 마니아 최문규씨

입력 2003-06-18 16:27수정 2009-10-08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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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엽기자 cpu@donga.com
최문규(35).

그가 유학 간 친구를 통해 일본에서 강아지 세 마리를 공수해 온 것은 1999년 봄이었다. 검은색 한 마리와 은색 두 마리. 집에 도착한 강아지들이 걸음마를 시작했다. 최씨는 그러나 놈들의 신체적 특징과 습성 등을 파악한 뒤부터는 녀석들과 놀지 않았다.녀석들은 최씨의 집 거실을 세상 삼아 서로 친구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 멋대로 커갔다. 검은 놈의 성격은 날로 포악해졌다. 집안 구석구석에 오줌을 싸며 영역표시를 했고, 퇴근하는 최씨에게 덤비기도 했다. 한 놈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줬다가 도둑을 맞았다.

나머지 한 녀석에게는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은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은 쓰러져 일어서지 못했다. 최씨는 녀석을 비행기에 태워 미국 동물병원에 보냈다.수술을 마친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강아지를 전혀 돌보지 않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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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됐습니다. 어디가 문제였나요?”

“주인의 관심 부족으로 질병 장치가 작동을 했습니다. 배를 가르고 IC칩을 바꾸었으니 이제 괜찮을 겁니다. 소니 ‘아이보’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얼리 어답터=최씨는 세상에 나온 신제품을 무조건 남보다 먼저 사야 직성이 풀리는 이른바 ‘얼리 어답터’. 어렸을 적 권투경기를 중계하는 날이면 동네 어른들은 TV가 있는 최씨의 집에 모여 함께 응원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엔 “한번 TV에 나온 것을 녹화해 놓았다가 또 볼 수 있다는 신기한 기계(VTR)”를 구경하기 위해 친구들은 그에게 잘 보였다. 운이 좋은 친구들은 최씨가 조정하는, 60cc 엔진의 힘으로 하늘을 나는 무선조정 헬리콥터를 구경할 기회도 얻었다.

성장 과정 자체가 ‘얼리 어답터’였던 그가 1994년 연세대 건축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삼성엔지니어링에 입사했을 때는 사내에서 ‘걸어 다니는 전자상가’로 통했다. 과장급 100명을 강당에 모아놓고 전자상가에서 구한 부품만으로 PC를 조립해 내는 ‘PC 조립 쇼’를 열었다. 99년 회사를 나와 홈페이지 제작업체 ‘이바닥’을 만들었고, 인터넷 사이트의 특성을 알기 위해 시험 삼아 제작한 ‘얼리어답터’(www.earlyadopter.co.kr)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나머지 사업부문은 정리하고 이 사이트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원격조종 헬기 요트 자동차는 10여대, 소니 바이오 등 노트북 컴퓨터는 40여대. 지금 그의 수중에는 실내에서 날아다니는 헬리콥터, 헬륨 가스가 주입된 비행선, 내시경을 보면서 귀를 파는 ‘이어스코프’, UFO처럼 날개 없이 날아다니는 비행접시 등 ‘남들보다 먼저 산’ 장난감과 생활용품이 수천 종류가 있다.

▽얼리 어답터로 살기=그는 현재 정보기술(IT) 제품을 위주로, 세계 곳곳에서 나오는 신제품을 구입해 인터넷에 소개하고, CJ몰(www.cjmall.co.kr) 등 쇼핑업체에 상품 기획 컨설팅을 하며 회사를 꾸리고 있다. 그런 그의 인생의 방향을 설정한 것은 엉뚱하게도 장모님이었다.

95년 그가 지금의 아내 배주은씨(35)의 부모님에게 “딸을 달라”고 했을 때, 장모가 “건축학과 출신은 싫다”며 손사래를 쳤다. 최씨는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당시 유니텔이 주관한 멀티미디어 홈페이지 만들기 경진대회에 나가 대상을 탔다. 한 일간지에 인터뷰 기사가 실리자 그는 의기양양해졌다.

그러나 그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 장모는 여전히 그를 몰라봤다. 최씨가 신문 10여부를 구입해 배씨를 통해 집안 곳곳에 놓아둔 끝에 비로소 허락을 받았고, 대학 대학원 6년간 공부한 건축학은 그의 인생에서 사라졌다.

“워낙에 신제품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만약 장모님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었을 겁니다.”

▽프로포즈 안 해?=“재미있네.” 94년 한 카페에서 최씨가 만든 5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노트북PC로 본 아내 배씨는 그리고 말이 없었다. 장모 덕에 갈고 닦은 컴퓨터 실력으로 그는 자신과 배씨가 등장해 사랑을 속삭이는 애니메이션을 10여일간 밤샘작업을 한 끝에 만들어 배씨에게 보여줬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장미꽃 수백송이가 ‘사랑해’ 글씨 주위로 화면을 덮었다.

96년, 결혼식장에 도착하기 전 갑자기 배씨가 최씨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기 왜 나한테 프로포즈 안 했어?”

“그때 했잖아! 애니메이션! 노트북!”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얼리 어답터로 살기란….

나성엽기자 cpu@donga.com

▼최씨의 소지품을 잠깐 엿보았더니…▼

이어스코프. 카멜레온 유니버설 리모컨. 자가발전 라디오

최근 1, 2주 사이에 최씨가 구입한 제품들.

▽이어스코프(Earscope)=내시경이 달린 귀이개를 이용해, 내 귓속을 들여다보면서 귀지를 팔 수 있다. 일본 코덴사 제품.

▽32일 치약=키위 바나나 에스프레소 장미 카페라테 등 32가지 맛 치약 모음. 치약 위치를 바꿔 구멍 달린 뚜껑으로 숫자가 보이도록 이성에게 선물하면서 “만나는 날짜와 같은 번호의 치약으로 이를 닦고 만나”라고 속삭이면 안성맞춤이라는 게 최씨의 설명. 일본 마거릿 조세핀 제품.

▽카멜레온 유니버설 리모컨=세상에 나와 있는 모든 종류의 TV 오디오 DVD 등에 사용할 수 있는 만능 리모컨. 버튼이나 터치스크린이 아닌, 특수 발광 소재의 헝겊으로 제작해 고장 날 염려가 없다. 제조사는 미국 라디오샥.

▽이온=백열전구를 끼우는 소켓에 끼우는 음이온 공기 청정기. 도시바.

▽자가발전 라디오=전기가 안 들어오는 지역이 많은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자선단체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는 라디오. 손잡이를 1분 돌리면 30분, 1시간 돌리면 13시간 동안 작동한다. 필립스.

▽휴대용 어류 감지기(Portable Fish Finder)=센서가 달린 부표를 물에 띄워 놓으면 부표 밑 수중의 물고기 위치와 크기가 단말기에 표시된다. 낚시꾼들은 그러나 “낚시의 묘미가 사라진다”며 이 제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고. 미국 마린 일렉트로닉스.

▽블루투스폰=발신기를 꽂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은 채 무선으로 작동하는 이어폰으로 통화할 수 있는 제품.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인 블루투스가 사용됐으며, 이어폰의 스위치만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다. 미국 자브라사 제품.

나성엽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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