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쇼핑업계의 꽃' 바이어

  • 입력 2003년 3월 27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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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 이마트 이영구 과장은 10년 경력의 베테랑 청과(靑果) 바이어. 그는 제철 과일이 나올 때면 산지에 내려가 텐트를 치고 농민들과 함께 생활한다. 이 과장은 “농가의 일손을 도우며 친밀감을 높이고 농가의 수확 일정을 파악하는 게 남보다 앞서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유통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바이어의 하루는 ‘경쟁’으로 시작해 ‘실적’으로 끝난다. 남보다 한발 앞서 싸고 품질이 뛰어난 상품을 찾아야만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유통업체들은 간판 바이어를 키우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바이어는 시장의 큰 손〓상품기획자(MD)로 불리는 바이어는 상품 기획, 구매, 점포관리, 판촉 등을 담당한다. 할인점 등 기업형 유통망이 성장하면서 혼자서 1년에 1000억원대 상품을 다루는 바이어까지 나왔다.

국내 할인점 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 바이어(100여명)의 1인당 평균 매출액(본인이 사들여 팔리는 금액)은 연간 300억원 정도.이마트 양곡 바이어 이강섭 과장은 지난해 170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이 밖에 과일 TV 냉장고 담당 바이어 등이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냈다.

▽발명, 발견, 예측이 경쟁력〓바이어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발명하거나 때로는 산골 오지를 돌며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낸다. 또 시장 변화를 미리 읽고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롯데백화점 윤종천 바이어는 교통카드를 지갑에 넣으면 에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에러 방지 칩을 내장한 지갑을 협력업체와 함께 개발했다.

제주 무는 이마트 바이어가 발굴한 상품. 육지에서 햇무가 나오지 않을 때 제주도에서 키운 햇무를 가져다 팔기 시작한 것. 제주 무는 99년 30만개, 지난해 73만개(6억5000만원)가 팔린 효자상품이 됐다. 이마트 바이어는 또 비금도 섬초, 제주도 유채 등 지역 특산 나물을 발굴해 전국에 소개했다.

LG이숍 강영아 대리는 지난해 가을 가죽소파 대신 천소파가 유행할 것을 예측하고 100여종이 넘는 천소파를 20∼30% 정도 싸게 내놓아 히트를 쳤다. 가구 및 인테리어용품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배 정도로 늘어난 것.

▽PD와 웹마스터까지〓새로운 유통산업으로 자리잡은 홈쇼핑과 인터넷쇼핑몰 바이어는 방송PD, 쇼호스트, 웹마스터 등 영역에 따라 ‘멀티 플레이어’로 변신한다.

LG홈쇼핑 박도형 바이어는 대학시절 프랑스 정부가 주관한 국제신인디자인콘테스트에 한국 대표로 출전한 디자이너 출신. 전문 지식을 이용해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그는 매회 7억∼8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인터파크 김재중 팀장은 지난해 30, 40대 주부 인터넷 사용자를 겨냥해 어린이들이 쉽게 젓가락 사용법을 배우는 교육용 젓가락 제품을 발굴했다. 공동구매, 사용후기 등 온라인 마케팅을 통해 입소문이 난 이 제품은 할인점 바이어들까지 제품 판매를 의뢰하면서 9개월 만에 30만개가 팔리는 성공을 거뒀다.

▽바이어가 핵심 경쟁력〓유통업체의 경쟁력은 물류시스템과 상품 조달 능력 등에 따라 판가름난다. 롯데 현대 신세계 등 유통업체들은 협상, 협력업체 관리, 신상품 개발, 가격 정책 등 바이어 실무에 관한 사내(社內)대학 과정을 개설하거나 외부 위탁연수, 해외 연수 등을 통해 바이어 육성에 나서고 있다.

신세계 이마트는 93년부터 바이어 재교육을 위한 유통연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바이어 2명을 중국 현지에 발령 내 중국 상품 발굴에도 나섰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지난해 의류 및 잡화 바이어 8명을 외부 기관에서 위탁 교육을 시켰다. 또 우수 바이어를 뽑아 영국에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등록시키고 영국 테스코 본사에 파견했다.

전공과 경력에 따라 바이어를 채용하는 관행도 자리잡고 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축산 담당 바이어 김천웅 과장은 축산물 등급판정사 자격증도 갖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최은숙 바이어는 미국보석감정사 자격증 소지자. 또 LG홈쇼핑 김태훈 수산물 담당 바이어는 대학에서 양식학을 전공했다.

MD전문교육기관 아카비전 유혜숙 원장은 “상품과 시장에 대한 전문 지식과 협상 능력, 협력업체 관리 능력을 갖춘 전문 MD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며 “실적에 따라 억대 연봉을 받는 바이어도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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