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개발어젠다 곧 윤곽]개방 어떻게

  • 입력 2003년 1월 7일 18시 24분



새해 들어 통상 개방 바람이 거세다. 세계무역기구(WTO)의 144개 회원국들이 공산품, 농산물, 서비스 시장 개방을 위해 진행하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달 안에 개방의 윤곽이 정해지므로 각국은 자국에 유리한 ‘개방 물꼬트기’에 골몰하고 있다. 3월까지는 농산물에 대한 관세 및 보조금 인하 방식(모덜리티·modality)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다. 서비스 시장 개방을 위한 ‘1차 개방 계획서’도 3월말까지 내야 한다. 비농산물(공산품과 수산 임산물 포함) 관세 인하 방식도 5월말까지는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경제계는 ‘개방 파고(波高)’를 경제 도약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찾는데 부심하고 있다.

▽‘공산품, 가급적 활짝 열어라’=지난해 말까지 WTO 사무국에 제출된 각 국의 관세 인하 방식 중 가장 급진적인 것은 미국안(案). 2005년부터 2010년까지 5% 이하 관세는 아예 없애고 5% 이상은 8% 이하로 내린 뒤 2015년부터는 전 품목을 무관세화하자는 것. 이에 대해서는 평균 관세율이 20∼30%인 개도국은 물론 평균 관세율이 3∼5%로 낮아 부담이 적은 다른 선진국들도 ‘전품목 무관세화’는 현실성이 낮다고 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관세율이 5∼10%인 품목은 3%로, 10∼25%는 7%로 낮추는 등의 방식으로 관세율을 내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는 개도국의 높은 관세율을 끌어내리면서도 선진국의 일부 품목의 높은 관세율 인하 효과는 적어 개도국이 반발하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과 개도국의 관세를 모두 내리는 방식을 제안했다. 선진국은 평균 관세율이 3∼5%로 낮기 때문에 평균 관세율보다 2∼3배 관세율이 높은 품목(관세정점 품목)의 관세를 내리자는 것. 또 개도국은 평균 관세율이 높은 대신 관세율이 25%가 넘는 품목의 관세를 많이 인하하자는 내용이다.

한국은 공산품의 시장 개방에 대해서는 적극적이지만 수산물과 임산물도 공산품과 같이 ‘비농산물’로 분류돼 수입 관세가 크게 내릴 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김창규(金昌圭) 산업자원부 국제협력기획단장은 “개방 방식에 대해 이견은 있지만 DDA 협상 이후에는 최소 3분의 1 이상 관세가 낮아져 공산품 시장은 크게 열리고 경쟁력에 따른 각 국간 산업 조정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농산물, 우루과이라운드(UR) 방식을 잡아라’=농산물 협상도 공산품 협상처럼 먼저 개방 방식을 정하고 그에 따라 개방 이행 계획서(양허안)를 낸다. 회원국들은 3월말까지 세부원칙에 합의한 뒤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리는 5차 WTO 각료회의까지 이행서를 내기로 했다.

농업은 모덜리티의 채택을 두고 한국 EU 일본 등 농산물 수입국 그룹(UR방식)과 미국 호주 개발도상국 등 농산물 수출국 그룹(스위스 방식)으로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스위스 방식은 모든 농산물에 일률적으로 수입관세 상한(미국은 지난해 7월 25%를 제시)을 적용하는 것이다. 반면 UR방식은 평균 관세율만을 정하고 각 국의 사정에 따라 품목별로 관세를 높거나 낮게 매기되 평균만 맞추도록 한 것.

한국은 참깨 대추 녹두 등 관세율이 500%가 넘는 품목이 40개가 넘어 스위스 방식이 채택되면 엄청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UR방식이 채택되더라도 평균 관세율과 함께 ‘스위스 방식’보다는 높지만 관세율 상한을 둘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관세율이 200% 이상인 품목이 100개가 넘는다. 농촌경제연구원은 UR방식을 채택하고 관세 상한을 200%로 하더라도 2005년에서 2010년 사이 농업 소득은 2조5000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농산물 보조금 감축 분위기도 한국에는 부담이다.

농산물 수출국 모임인 케언즈그룹과 개발도상국 등 WTO 회원국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그룹이 2005년 이후 “품목별로 5%가 넘는 감축대상 보조금을 없애자”고 주장한다. 한국은 2000년 기준으로 쌀 수매 등을 위해 쌀 생산액의 15.7%에 이르는 1조6472억원의 감축대상 보조금을 농가에 지급했다.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수매사업 예산을 3분의 1로 줄여야 한다.

▽‘서비스 시장, 분야별 명암 엇갈려’=서비스 시장 개방 협상에서 한국은 24개국으로부터 시장개방 요청서를 받았고 36개국에 개방 요청서를 냈다. 각 국은 3월말까지 자국의 1차 ‘개방 계획서’를 낸 후 이를 바탕으로 내년 말까지 협상을 계속한다.

한국의 서비스 시장은 분야별로 공수(攻守)가 비교적 뚜렷하다.

법률시장 등 전문직과 영화, 교육, 의료 분야는 거센 개방 압력을 받고 있다. 일정 비율의 한국 영화를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쿼터 폐지 요구가 대표이다. 반면 통신 해운 유통 금융 건설 등은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개도국은 물론 선진국을 향해서도 문을 열라고 요구하고 있다.

외교통상부 민동석(閔東石) DDA 담당 심의관은 “서비스 시장 개방은 공산품 관세가 내리는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며 “DDA 협상을 국가의 산업구조와 경쟁력을 한층 올리는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천광암기자 iam@donga.com

서비스 개방 12개 분야와 주고받은 개방 요구안
요구받은 것(24개국)12개 분야요구한 것(36개국)
-국제법 관련 자문서비스 허용
-회계 세무 건축설계 시장 완전 개방
-인력공급업 보안 디자인 시장 완전 개방
-부동산 중개업, 건물 청소업 등 개방
전문직 및
사업서비스
-건축사 엔지니어링 개방
-간호사 조무사 영업 허용
-광고 출판 인쇄 개방
-특급 배달 서비스 허용
-스크린쿼터제 폐지
-라디오 채널 소유 허용
커뮤니케이션(통신 시청각)-통신사업 지분제한 철폐
-방송프로그램 개방(중국)
-도급 한도제, 하도급 의무제 폐지
-노동인력의 이동 허용
건설-건설사 외국인 지분제한과 내국인 고용의무 철폐(중동 국가)
-중등교육 시장 개방
-대학 성인교육 개방
교육-고등 성인교육 개방
-국경간 공급 제외 품목 철폐 또는 최소화
-직접 판매에 대한 제한 완화 등
유통-점포 개설 입지 규모, 내국 상품 사용 의무 등 규제 완화
-도로 청소 등 환경 미화 관련환경-환경 엔지니어링 등 연관 서비스 개방까지 요구
-중소기업 의무대출 겸업금지 폐지
-외국재보험상사의 지사 설치 허용
금융 -보험 은행 개방 확대
-한방 치과 수의사 시장 개방
-병원 서비스 개방
보건-병원영업 허용
-호텔 식당 여행사 제한 철폐관광 -호텔 식당 여행사 관광안내업 개방
(중국 동남아 미국 스위스 등)
-통신사 영화관 개방오락 문화-공연 엔터테인먼트 분야 개방
-도로화물 운송, 철도여객 및 화물운송, 창고 보관업 등 개방 운송(해운 육운 항공)-국제해운 항만 서비스 개방
-발전소 등 에너지 시장 개방 기타(에너지 등)-에너지 생산 유통 판매의 다양한 분야 개방 요구
자료:외교통상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DDA 무역 자유화 협상…UR의 후속편▼

도하개발어젠다(DDA)는 1995년 출범한 세계무역기구(WTO)가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다시 시장 개방을 위해 시작한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

WTO는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4차 각료회의에서 새로 시작하는 다자협상을 ‘DDA’로 부르기로 했다. 케네디라운드 우루과이라운드처럼 과거 다자협상에는 ‘라운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이 과거 라운드들이 주로 선진국의 이익을 반영했다며 라운드라는 명칭 사용에 반대해 DDA로 했다.

DDA는 UR의 후속편 성격을 지닌다. 1986년부터 1993년까지 진행된 UR협상을 통해 공산품 관세율이 선진국은 평균 40%, 개도국은 33%가량 낮아졌다. DDA협상 후에는 최소한 UR 이상의 관세율 인하가 이뤄질 전망이다.

UR협상을 마치며 국제무역 질서를 관리하기 위해 생겨난 WTO의 회원국들은 공산품 위주였던 UR와 달리 농산물과 서비스 시장 개방이 필요하다며 2000년부터 새로운 협상(뉴라운드)을 하기로 했다. 또 UR에서 상당폭 관세가 내려간 공산품 관세의 추가 인하 협상도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DDA는 크게 농산물, 비농산물, 서비스 등 3가지가 주요 협상 분야가 됐다. 여기에 반덤핑 등 규범, 환경, 지적재산권, 분쟁해결 절차 등 4개 분야도 협상 그룹을 구성해 DDA협상은 모두 7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DDA는 2004년까지 협상을 마치고 2005년 1월부터 연도별 계획에 따라 관세인하, 서비스 시장 개방 등의 합의사항을 실행할 계획이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산업별 영향은▼

도하개발어젠다(DDA) 등 다자간 협상은 무역장벽을 헐어 세계 무역을 늘림으로써 각국 및 세계경제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1961년부터 99년까지 세계 총생산은 3.9배 늘었으나 수출은 8.4배 증가했다. 공산품 관세인하가 세계경제 성장을 이끌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DDA 협상에 농업분야도 포함된 것은 농산물 수출국의 입김이 반영된 측면이 크다. 하지만 세계 농산물 시장에서 심각한 수급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 세계적 차원의 농업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퍼져 있다.

한국의 농업은 DDA 협상 결과에 따라 높은 개방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각국의 평균 관세율을 정하고 품목에 따라 높고 낮은 관세율을 인정하는 ‘UR방식’이 채택되더라도 2005년에서 2010년까지 2조∼4조원가량 농업소득이 줄어들 것으로 농촌경제연구원은 분석한다. 이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하는 협상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산품 분야에서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한국은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2002년 32%)가 높고 무역의존도는 70%에 가깝다. 교역 규모는 세계 11위다. 공산품 관세율이 낮아지면 가전 일반기계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 품목의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산업연구원(KIET)은 전망했다.

서비스 시장 개방은 외국인 투자 증가에 따른 기술이전과 경쟁력 향상으로 국내 서비스산업이 발전하고 국내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분석했다. KIEP는 1996년 유통시장이 개방되기 전후 노동생산성 증가율을 비교한 결과 1990∼1995년 5.09%에서 1995∼1997년 7.17%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김준동(金準東) KIEP 연구위원은 “DDA로 서비스 교역 장벽이 33%가량 낮아지면 한해 ‘후생 증대효과’는 약 52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라고 말했다.

물론 법률 영화 등 국내 관련산업의 상대적 경쟁력이 낮아 대책마련이 시급한 업종이 적지 않다는 ‘그늘’도 잊어서는 안 된다.

구자룡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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