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선물]“산타로 사는 두달 꿈을 선물합니다”

  • 입력 2002년 12월 23일 17시 40분



<<“와, 산타할아버지다.”“어, 산타네.”

2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롯데월드 놀이동산. 선물바구니를 든 산타할아버지(산타) 2명과 루돌프 사슴 ‘두 마리’가 등장하자 주위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단체로 놀러온 유치원생들의 한 줄 행진이 무너졌고, 유모차를 밀고 온 젊은 엄마들이 종종걸음을 쳤다.

이들 산타팀은 산타역의 백대룡씨(26), 조경남씨(24), 또 ‘루돌프 사슴’ 역은 김미영씨(23·여), 강은실씨(22·여)로 짜여졌다. 비록 젊은 산타지만 이들은 해마다 이맘때면 산타 역할을 해온 베테랑들. 또 루돌프 사슴도 뿔 달린 모자를 쓰고 엉덩이에 꼬리를 단 우스꽝스런 모습이나 아이들은 단번에 알아챈다. 11월1일부터 12월25일까지 산타와 루돌프로 변신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우리는 스타 중의 스타

이들은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있는 20분 동안 순례에 나선다. 시나리오에 따라 화려하고 특별한 연기를 펼치는 게 아니다. 산타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루돌프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신고, 한 손에 사탕과 축하카드가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구경꾼 사이를 누빈다. 하지만 어느 쇼보다도 인기가 높다.

사탕 200여개는 순식간에 동이 난다. 그냥 뿌리는 게 아니라 가위 바위 보 등 가벼운 게임을 통해 선물하는데도 말이다. 너도나도 몰려들어 “산타할아버지”를 연호한다. 또 함께 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쇄도한다. 많을 때는 100차례 이상 사진을 찍기도 해 공연시간을 훌쩍 넘기곤 한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이런 분위기는 더욱 고조된다. 요즘처럼 크리스마스 직전에는 공연에 나섰다하면 수십명에게 둘러싸이기 일쑤다.

조씨는 “꼬마가 서슴없이 다가와 안기곤 한다”면서 “롯데월드에서 수없이 많은 공연을 하지만 우리 팀처럼 사람을 몰고 다니는 것은 드물다”고 자랑했다.

때문에 너무 재밌고 보람있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백씨는 “나를 보는 순간, 아이들의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난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저절로 힘이 난다”고 말했다. 물론 늘 흥겹지만은 않다. 짓궂은 아이들도 더러 있다. 가장 황당하고 속상한 경우가 꼬마 아이가 다가와서 “엄마, 이리와 봐, 이거 가짜야”라며 수염과 가발을 벗기려할 때다. 백씨는 “아이가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아 서글픈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다행히 이런 아이는 100명 중 1명 꼴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루돌프 사슴들도 꼬리를 잡으려는 엉뚱하고 ‘엉큼한’ 중고등학교 남학생들로 간혹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타고난 ‘끼’를 맘껏 풀어라

물론 이들은 산타 역할로만 끝나지 않는다. 적어도 1인당 하루 다섯 번 정도의 크고 작은 공연에 서로 다른 배역으로 나간다. ‘피에로’ 가 되기도 하고 ‘눈사람’, ‘댄서’ 등 다양한 배역을 맡는다. 물론 가장 마음에 드는 건 산타와 루돌프 사슴.

여고시절 에어로빅을 배워 강사까지 했던 강씨의 전공은 춤. 때문에 크고 작은 공연에서 댄서로 무대를 누빈다. 하지만 어릿광대 ‘피에로’로 분장하기도 한다.

4년 동안 공연을 해 온 백씨도 산타 역할을 마친 뒤 눈사람으로 변신한다. 눈사람 복장에 얼굴도 아닌 팔만 내놓고 손으로 할 수 있는 마임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백씨의 팬클럽(cafe.daum.net/qoreofyd) 이 결성돼 있을 정도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팬들은 분장에도 불구하고 대번에 그를 알아보곤 한다.

요정으로 곧잘 등장하는 김씨는 순정파 공연단. 고등학교 졸업 뒤 무작정 공연단 문을 두드렸고 특기가 없어서 안 된다는 말에도 굴하지 않았다. 덕택에 힘든 수습 기간을 견뎌내고 정식 단원이 됐다. 때문에 벌써 단원이 된 지 2년이 지났지만 공연 짬짬이 마련된 연습시간에도 여전히 열심이다.

반년 전 군대에서 제대한 조씨는 고교시절 무용을 했고 가수 지망생으로 음반을 준비하기도 한 ‘끼’의 사나이. 각종 쇼의 남자 댄서 역을 도맡고 있는 그는 “시즌마다 새로운 배역으로 다시 태어나난다”고 말했다.

●산타할아버지가 필요한 이유

2m짜리 외발 자전거로 눈길을 모으는 조씨는 12일 서울대병원 부설 어린이병원에 위문 공연을 갔다온 뒤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반나절 동안 지체장애 아동이나 심장병 걸린 아이들에게 긴 ‘요술풍선’을 불어 꽃이나 강아지, 인형들을 만들어 나눠주기도 하고 사탕 등 선물도 줬다.

그는 “소아암 등 몹쓸 병에 걸린 아이들도 산타할아버지만 보면 환하게 웃음 짓는다”면서 “병상에 누워서도 캐럴을 부르는 아이들과 놀면서 가슴 한 구석이 뻐근해졌다”고 말했다.

강씨는 “산타를 보면 흠칫하는 아이들은 십중팔구 자기가 말썽부린 기억에 겁먹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 행복하기도 하고 자부심도 느낀다”고 말했다. 롯데월드 공연팀은 1년에 4, 5차례 몇명을 뽑아 이런 위문공연을 하고 있다. 물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산타는 위문공연팀에 빠져서는 안 되는 주인공이다.

알 것 다 아는 어른들에게도 산타할아버지는 반가운 대상. 손자, 손녀와 함께 온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산타를 보는 순간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김씨는 “산타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산타는 존재한다”면서 “산타를 손꼽아 기다리며 반성하는 아이들에게서 어른들도 배울 것이 많다”고 말했다.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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