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한푼 안내고 증자참여…사상최대 주식가장대금 납입 충격

  • 입력 2002년 11월 27일 17시 57분


지난달 말 터진 사상 최대의 가장(假裝)납입 및 주가조작 사건의 불똥이 상장·등록 회사로 옮아 붙었다.

검찰은 27일 서울 명동 사채업자와 은행원이 가담한 이번 사건을 수사하다 새로 1조8000억원 규모의 주식대금 가장납입을 적발했다. 관련된 기업 수는 무려 7800여개.

검찰은 “거래소에 상장된 디에이블 대표 등 2명을 구속했다”면서 “디에이블 외에 S, C, H, M사 등 15개 상장·등록사가 주식대금 가장납입에 연루돼 있다”고 밝혀 사건의 파장이 더 커질 전망이다.

▽가장납입〓가장납입은 기업이 유상증자할 때 대주주가 실제로는 한푼도 내지 않으면서 증자에 참여한 것처럼 꾸미는 것을 말한다.

A라는 회사가 100억원 유상증자를 의결했고 이 회사 대주주가 30%의 지분을 갖고 있다면 대주주도 증자에 지분만큼 참여해야 하므로 30억원을 자본금으로 내야 한다. 그런데 대주주는 자기 돈 30억원을 내지 않고 빌린 돈을 회사에 내 증자에 참여한 것처럼 꾸민다. 그리고 일반투자자로부터 증자받은 7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빼내 빌린 돈을 갚는 수법. 정작 대주주는 한푼도 내지 않고 일반투자자로부터 돈을 끌어내는 것.

27일 구속된 디에이블 대주주 이모씨도 지난해 9월 71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면서 자신이 내야 할 30억원을 사모펀드로부터 빌려 회사에 낸 뒤 일반투자자가 낸 41억원 중 30억원을 빼내 이를 갚은 혐의를 받고 있다.

▽확산되는 파문〓검찰은 명동 사채업자나 강남 일대의 사모펀드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대금을 가장납입한 상장·등록사가 14개나 된다고 밝혔다.

디에이블이 27일 하한가로 곤두박질친 것처럼 검찰 수사에서 혐의가 발견된 기업 주가는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부패의 연결 고리가 얼마나 길게 얽혀있는지도 관심사. 가장납입 세력은 빌린 돈으로 회사 규모를 키우거나 다른 회사를 인수한 뒤, 그 회사의 어음이나 주식을 담보로 또 다른 회사를 인수해 그 회사 자금을 횡령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지금도 성행〓올 들어 코스닥 등록 심사가 엄격해지면서 코스닥에 등록하지 못해 자금줄이 마른 벤처기업이 증자에 나섰다. 이때 가장납입 수법이 애용된다. 사채업자들도 자금 굴릴 때가 마땅찮아 ‘반짝 대출’에 고리를 챙기는 ‘가장납입 시장’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큰손들이 돈을 모아 만든 사모펀드는 100억원을 가장납입 대금으로 빌려준 뒤 한달 만에 원리금 105억원가량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한 개인투자자는 “올여름 가장납입이 가장 심했으며 가장납입을 위해 떠도는 돈이 지금도 수천억원대에 이른다”고 말했다.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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