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색깔보면 사풍 알 수 있다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8시 22분


컴팩에서 근무하던 K씨는 5월 컴팩이 휴렛팩커드(HP)에 합병되면서 한동안 마음 고생을 톡톡히 해야 했다. 기업 문화가 너무 달라 변화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컴팩의 사풍은 ‘일단 몸을 던져보자’식. 실무 담당자의 권한을 최대한 인정해주고 업무도 열정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런데 HP와 합병된 후로는 상부에 올리는 보고서가 갑자기 많아졌다. 담당자의 전결권을 인정하기보다는 세세한 것까지 일단 상부에 보고하는 체제다. 업무 연락도 1 대1로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차분하고 합리적인 대신 위계질서가 엄격한 셈이다.

K씨는 이 같은 두 기업의 문화 차이를 다소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빨간색과 파란색 문화’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로고 색깔을 보면 기업 문화가 보인다는 것. 컴팩을 비롯해 오라클, 코카콜라, 나이키 등 빨간색 계열 로고를 쓰는 기업은 열정적이고 의사결정 시간이 아주 빠른 반면 파란색 계열 로고를 쓰는 HP, 필립스, 인텔 등은 의사결정이 침착하고 미래 지향적인 특징을 갖더라는 것. 창업자의 이념과 정신이 로고 색깔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오라클과 HP. 오라클은 일에 대한 열정을 강조한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속에 직원들이 서로 부를 때도 직책 대신 ‘님’이나 ‘선생’으로 호칭한다. 창업자인 래리 앨리슨이 ‘고정 관념을 타파하는 젊은 마인드’를 강조하면서 직급 파괴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오라클은 창의적인 기업문화를 앞세워 77년 창립 이후 매년 100% 가까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HP 창업자인 휴렛과 팩커드는 대공황으로 인해 고통받는 이웃을 보면서 해고 없는 기업, 안정적인 기업,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는 기업을 만들고자 했다. 이 때문에 HP는 직원복지에 많은 신경을 쓰는 한편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 연구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로고 색깔의 차이는 이들 기업의 한국 현지화 전략으로도 이어진다. 한국오라클은 89년 진출 이래 과감한 마케팅을 통해 국내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로 거듭났다. 특히 한국오라클은 오라클 전 세계 지사 중 매출 10위 안에 드는 성장세를 보였다. 이에 비해 한국HP는 삼성-HP로 한국에 진출, 홀로 서기 전까지 삼성을 통해 안정적으로 한국에 연착륙했다.

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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