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여성속옷 디자이너 윤종기씨 "이젠 '여자' 알것 같아"

  • 입력 2002년 10월 31일 17시 46분


임프레션 디자인실의 청일점인 윤종기씨가 자신이 디자인한 호랑이무늬 브래지어와 팬티를 들어 보이고 있다.-사진제공 임프레션
임프레션 디자인실의 청일점인 윤종기씨가 자신이 디자인한 호랑이무늬 브래지어와 팬티를 들어 보이고 있다.-사진제공 임프레션
‘지하철에서 여성 속옷 전문 잡지를 보는 남자. 야한 비디오를 봐도 여체(女體)보다 속옷에 눈길을 주는 남자. 치마나 바지 위로 드러나는 속옷 선에 시선이 고정된 남자.’

패션내의 브랜드 임프레션 디자인실에 근무하는 윤종기씨(29)는 이런 남자다. 자칫 오해를 받기 쉬운 그의 정체는 브래지어, 팬티, 슬립 등 여성 속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9명의 속옷 디자이너 가운데 유일한 남성이다.

스스로 만든 옷을 입어 보려고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한 윤씨는 지난해 7월 여성 속옷 디자이너로 첫발을 내디뎠다. 잠옷 상품기획자(MD)로 일하던 윤씨의 꼼꼼하고 섬세한 눈썰미를 눈여겨본 임프레션 강은경 디자인실장(36)의 권유 때문이었다.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 속옷을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이유.

처음에는 남성 디자이너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가 올 가을 내놓은 호랑이무늬 브래지어와 팬티 세트가 매출 1, 2위를 다투는 효자 상품으로 떠오르자 상황은 달라졌다.

“처음 호랑이무늬 옷감을 골랐을 때 다른 여성 디자이너들은 무섭다고 피하더군요. 약간 어둡지만 섹시한 느낌이 들겠다 싶어 골랐는데 시장의 반응이 예상보다 뜨거웠어요.”

그동안 실수도 많았다. 핸드백을 매는 여성들을 생각하지 못하고 브래지어 끈 조절기를 어깨 위에 오도록 만들었다가 고객의 항의를 받았다. 섹시한 멋을 강조하려다가 입기 불편한 시제품을 만들어 여자 선배들에게 꾸지람을 받기도 했다.

그는 “맞선을 본 여성에게 여성 속옷 디자이너라고 신분을 밝혔다가 퇴짜를 맞은 적도 있다”며 “의류학과 진학을 만류하던 부모님이 주변 사람들에게 ‘아들이 만든 옷’을 자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래도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비록 스스로 만든 옷을 입지는 못하지만 여성들이 인정해 주는 진정한 프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윤씨의 새로운 꿈이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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