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위, 엉터리 회계보고서 믿고 綜金 영업재개 승인

  • 입력 2002년 9월 25일 06시 43분


금융감독위원회가 회계법인의 엉터리 감사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대한종금(99년 6월 퇴출)과 나라종금(2000년 5월 퇴출)에 대한 영업재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3조4453억원의 공적자금이 더 들어가게 된 사실이 감사원의 특감 결과 밝혀졌다.

민주당 김효석(金孝錫) 의원이 입수한 2001년 감사원 특감자료에 따르면 98년 5월 금감위가 대한종금과 나라종금의 영업 재개를 결정하면서 회계법인이 낸 부실 감사보고서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인정하는 바람에 예금 대지급 규모가 2조3353억원이 늘어나고 순자산은 3조4453억원이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안진회계법인과 산동회계법인은 98년 4월 영업정지 상태였던 대한종금의 회계장부를 실사하면서 순자산 부족액이 1766억원이었는데도 자회사인 모 금고의 주식가치를 과다계상해 순자산을 138억원으로 평가하는 바람에 -1.48%였던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이 5.23%로 높게 산정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 나라종금의 회계를 맡은 삼일회계법인도 순자산 부족액이 339억원이나 됐는데도 특정금전신탁 예치금 966억원에 대한 평가손실 653억원을 회사측에서 숨긴 사실을 발견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순자산을 314억원으로 산정했다. 이에 따라 나라종금의 BIS 자기자본비율도 -1.50%에서 5.58%로 잘못 산출됐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금감위는 이들 회계법인이 낸 보고서를 그대로 믿고 BIS 자기자본비율이 4% 이상인 종금사에 대해서는 영업 재개를 승인한다는 기준에 따라 98년 5월 1일 두 종금사의 영업 재개를 승인했다. 두 회사는 유동성 위기에 따라 97년 12월 10일 영업중지됐었다.

그러나 이들 종금사는 영업 재개 후에도 부실이 더 커져 대한종금은 99년 6월 25일 다시 문을 닫았고 나라종금도 2000년 5월 3일 영업인가 취소결정이 내려졌다.

감사원은 금감위의 판단 착오와 업무 태만으로 두 회사의 예금 대지급액이 영업정지 때보다 2조3353억원 늘어나면서 순자산도 3조4453억원이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공적자금이 3조4453억원 더 들어가게 됐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12월 업무 소홀의 책임을 물어 금융감독위원장에게 주의조치를 내렸다.

감사원은 또 금감위에 분식회계를 한 나라종금 대표이사 등 임원 4명은 ‘주식회사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고발하고 자산 부채 실사를 엉터리로 한 3개 회계법인에 대해 조치를 취하도록 지시했으나 이미 3년 시효가 넘어 회계법인들의 책임은 묻지 못했다.

이에 대해 금감위 측은 “당시 영업재개 결정은 금감위 독자판단이 아니라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종금사 경영정상화평가위원회(위원장 김일섭 이화여대 교수)가 자본적정성과 유동성 경영건전성 등을 종합 평가한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며 “영업재개 후 상황이 어려워져 추가부실 발생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국회 공적자금 국정조사특위는 당시 종금사 경영정상화평가위원장을 맡았던 김일섭 교수를 증인으로 채택해 회계법인이 제출한 부실 보고서를 검증 없이 채택한 경위를 따지기로 했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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