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슈워츠 초청 간담회]'中금융위기' 대비해야

  • 입력 2002년 9월 22일 18시 00분


미래학자인 피터 슈워츠 모니터그룹 GBN 회장과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인 젊은 경영자들이 '미래'라는 주제를 놓고 오찬 간담회를 나누고 있다. - 김동주기자
미래학자인 피터 슈워츠 모니터그룹 GBN 회장과 브이소사이어티 회원인 젊은 경영자들이 '미래'라는 주제를 놓고 오찬 간담회를 나누고 있다. - 김동주기자

한국 경영계의 차세대 주자들이 ‘미래를 경영하자’고 나섰다.

주요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젊은 경영자들의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 회원들이 미래학자인 피터 슈워츠 GBN(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크) 회장(56)을 초청, ‘미래’를 의제로 고민을 나눈 것이다.(1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브이소사이어티에서)

이는 “준비하지 않는 기업에는 기회가 와도 소용이 없다”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준비경영론’과도 상통하는 대목.

“정부나 기업의 경영자들이 종종 ‘놀라운 일(surprise)’의 의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곤 해요. 석유 파동, 9·11 테러, 소련의 해체 등 ‘놀랄 일’도 사실 미리 정교한 시나리오 작업을 했더라면 예측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미래의 실마리는 언제나 현재에 있으니까요.”

세계적 전략컨설팅사인 미국 모니터그룹의 자회사인 GBN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슈워츠 씨는 ‘시나리오 경영’으로 유명한 미래학자 겸 경영전략가. 일찍이 소련의 해체를 예견했고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미국 주요건물 테러도 예언한 주인공이다.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놀랄 만할 일들’에 대해 슈워츠 회장은 중국의 금융위기, 러시아까지 포괄하는 ‘큰 유럽’의 등장, 인도네시아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의 불안정, 정부와 시장 중 정부 쪽으로의 회귀, 인간 수명의 획기적인 연장 등을 언급했다.

한국의 젊은 경영자들은 △북한의 존속 또는 붕괴 △중국의 금융 위기 △일본 경제의 회복불능 △중국과 대만 통일 등 ‘한국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전략과 준비에 대해 논의했다.

“시나리오 작업이란 현재의 데이터를 가지고 미래에 ‘있을 법한’ 상황들을 그리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늘 전략적인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하는 최고경영자들에게 시나리오 플래닝은 유용한 기법 중 하나입니다.”(슈워츠 회장)

“그렇습니다. 시장의 흐름을 읽고 선점하는 것이 중요한 산업에서는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능력이 경쟁력을 좌우하기도 하지요.”(경방 김준 전무)

이날 간담회에는 휴맥스 변대규 사장, 경방 김준 전무, 한솔아이글로브 조동만 회장, 삼보컴퓨터 이홍순 부회장, 하나기술 김도열 사장, 퓨쳐시스템 김광태 사장, 삼양사 김원 사장, 브이소사이어티 이형승 사장 등 브이소사이어티 회원과 모니터그룹 서울사무소 송기홍 부사장, 홍범식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피터 슈워츠는…] '9·11테러 가능성' 98년 예측

피터 슈워츠 GBN회장

석유업체 로열더치셸은 1968년에 산유국들이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에 반발해 정치적으로 뭉칠 수 있다는 등의 변수를 기초로 ‘에너지 위기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유가가 안정적이던 때라 ‘쓸데없어’ 보였지만, 73년 중동 전쟁으로 정말 에너지 위기가 닥쳤다. 로열더치셸은 업계 7위에서 3위권으로 올라섰다.

시나리오에 관심이 많은 이 회사는 82년 시나리오 기획 책임자로 피터 슈워츠를 영입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50년대 군사 전략에서 사용되던 기법. 기업경영에 접목된 것은 70년대 후반부터다.

슈워츠 회장은 “앞으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만들어, 미래에 대한 의사결정을 오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나리오야 어차피 ‘가상’이니 수천, 수만 가지라도 짤 수 있지만 불확실성, 발생 가능성, 발생할 경우 미칠 영향 등의 정도에 따라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있을 법한’ 시나리오여야 대비할 가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정교하게 도출한 시나리오인데도 있을 법하지 않은 허황된 이야기라고 여기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냉전이 한창이던 80년대 초에 ‘어이없게도’ 소련의 해체에 대한 시나리오를 그린 사람 중 하나.

“당시 소련의 공식 통계로는 경제성장률이 연평균 40%였어요. 그렇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줄고 있었죠. 소련 경제가 붕괴 직전이라고 보고 2가지 시나리오를 짰죠.”

9·11테러도 마찬가지. 그는 98년에 ‘미국 주요 건물에 대한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공격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시나리오는 점술가가 영감을 받듯이 떠올리는 게 아니라 정교한 데이터 분석 작업을 통해 만드는 거예요. 90년대에 거의 2년 꼴로 큰 테러가 있었고, 국제 정치적 정황상 2000년이나 2001년에도 가능성이 있으며, 가능한 수단은 비행기 납치와 뉴욕 워싱턴의 상징적인 건물 공격이라는 내용이었는데 미국 정부는 그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거죠.”

시나리오를 제대로 도출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적(敵)은 ‘부인(denial)’. 변화를 가정하지 않는 정태적 사고 탓이다.

“일단 어떤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인정하면 그에 대한 행동(action)을 준비해야 하잖아요. 기업도 ‘변화 의지’가 없다면 미래에 대한 수많은 단초들에 눈을 감게 되죠.”

미래 전문가이다보니 ‘마이너리티 리포트’‘딥 임팩트’ 등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 중 그의 감수를 거친 것이 많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도 막역한 사이.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위해 나를 포함한 15명의 각 분야 전문가가 3일간 합숙을 했어요. ‘현실적으로’ 만들기 위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점에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들을 정리하고 이에 맞게 아이디어를 냈죠.”

범인을 색출하는 거미군단, 홍채 인식을 통한 고객관계관리(CRM), 전자 신문, 옆으로 달리게 돼 있는 도로 등이 모두 슈워츠 회장팀이 제시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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