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보, 전직은행장 등 1조원 손배소

  • 입력 2002년 8월 6일 16시 19분


'부실기업을 지원하라고 은근히 압력을 행사해 놓고 이제 와서 은행원에게 모든 책임을 씌우는 것은 억울하다.'

예금보험공사가 제일 우리 조흥 서울 경남 평화 등 6개 은행의 전직 행장 10명을 포함, 100여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1조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기로 하자 해당자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도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진 부실대출을 현재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예보, 민사소송 대상자 확정〓소송을 당하는 전직 은행장은 이관우(옛 한일) 김진만(옛 한빛) 이철수 신광식(제일) 우찬목 장철훈(조흥) 손홍균 장만화(서울) 박종대(옛 평화) 김형영(경남) 행장 등 10명이다. 소송주체는 해당은행이며 규모는 △제일 2600억원 △우리 2500억원 △조흥 서울 2200억원 등이다. 한 행장은 개인으로만 225억원이나 된다.

제일은행의 소송대상은 주로 한보 대우그룹 여신이며 나머지 은행은 중소기업 대출이 많다. 예보 박시호 조사1부장은 "여신관련 법과 규정 등을 위반하며 대출이 나가 부실해진 것이 주된 대상"이라며 "은행장은 부실대출을 결정한 이사회 의장으로서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의 거센 반발〓전직 A 은행장은 "현정부 초기 때 기업회생을 명분으로 정책적 판단에 따라 여신평가점수가 40점인 기업도 지원해준 적이 있다"며 "금융당국에서 관행으로 묵인했던 것을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B은행장은 "똑같은 논리를 적용한다면 하이닉스에 신규자금을 지원한 공적자금 투입은행도 민사소송을 당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론을 제기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문서나 기록을 남기지 않는 행정지도로 일관했고 은행원들도 전화녹취를 생각하지 못해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예보가 95년까지 나간 부실대출은 제외하고 96∼98년 이뤄진 대출만 문제삼았다는 것. 또 현대그룹에 수조원을 빌려줘 허약해진 외환은행은 공적자금이 아니라 공공자금(한국은행 출자)이라는 이유를 들어 조사대상에서 제외한 점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권에서는 "공적자금 회수율이 낮아지자 국민적 불만을 누그러뜨릴 희생양으로 전직 은행장을 골랐다"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