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소비자 경영참여시대’…‘평가단’ 발언권 커져

  • 입력 2002년 5월 27일 17시 29분


한 회사가 내놓은 신제품을 소비자모임 참가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한 회사가 내놓은 신제품을 소비자모임 참가자들이 둘러보고 있다.
주방가전 제조업체인 동양매직은 최근 광고모델을 탤런트 김남주에서 윤해영으로 바꿨다. 경영진은 기존 모델을 선호했지만 소비자 모임에서 친근한 주부 이미지를 가진 윤씨로 교체하자는 의견을 내놓았기 때문. 광고콘티도 이 모임의 의견을 따랐다.

소비자의 의견에 따라 회사 경영진이 결정을 바꾸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예전에는 만들어진 제품을 홍보하거나 기능을 일부 보완하기 위해 활용됐던 소비자모임이 최근에는 아예 제품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적극 관여하고 있다.

기업도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소비자 의견을 100% 수용하는 추세. 소비자의 의견에 따라 제품이 살거나 죽는 ‘소비자 경영’ 시대가 도래한 것.

생활건강용품 생산업체인 지인텍은 최근 1차 개발이 완료된 시제품 3가지를 놓고 시판 여부를 고민하다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개발을 중단했다. 이 회사가 당초 기획했던 상품은 전동식 칼, 스팀청소기, 피부 리프팅기.

이 제품들의 개발이 중단된 데는 20명으로 구성된 ‘여성소비자평가단’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난상토론을 통해 “언 육류를 썰 때는 편리하지만 너무 위험해 보여 주부들은 안 쓸 것(전동식 칼)” “스팀을 뿌리면 깨끗하기는 하겠지만 물기를 닦기 위해 마른걸레질을 또 해야하므로 불편할 것(스팀청소기)”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지인텍은 이 제품들의 개발을 중단하는 대신 이 모임에서 아이디어를 내놓은 ‘얼굴 피지 제거기’ 등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 서정주 사장은 “지난해 말 획기적 제품이라고 생각하고 내놓았던 다리 각선미 보정 운동기구가 시장에서 외면당했을 때 소비자모임의 의견에 따라 기능을 구조조정한 뒤 큰 인기를 끌게 됐다”며 “올해부터는 격주단위로 소비자 모임을 정례화해 이들의 의견을 사전에 100% 수용한다”고 설명했다.

동양매직도 광고모델만 바꾼 게 아니다. 소비자모임인 ‘매직패밀리’의 의견을 받아들여 건강식인 현미를 먹기 좋게 해주는 ‘현미 전용 믹서’나 날개부분을 따로 떼어내 손질할 수 있는 식기세척기 등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냈다.

이 모임을 운영하는 황지영 대리는 “2월 말부터 온라인을 통해 1000명의 평가단을 운영 중”이라며 “경영진이 잘 모르는 소비자의 취향을 소비자들은 알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했고 현재까지 성과가 좋다”고 설명했다.

화장품 회사인 태평양은 얼마 전 내놓은 ‘마몽드’의 세안용품 이름을 소비자 모임을 통해 얻었다. 이 회사는 새 제품을 내놓기 전후해 소비자 모임을 통해 사용감을 테스트하거나 원하는 제품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제품 개발에 적극 참고한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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