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이제는 창의성]시장판도 바꾼 독창적 제품들

  • 입력 2002년 3월 31일 21시 29분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 ‘창의성’만큼 강조되는 덕목도 드물다. 모든 기업 경영자들이 쏟아 붓는 노력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기업의 창의성 극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렇지만 기업 조직에서는 창의성을 북돋기보다 억누르는 경우가 더 많은 게 현실이다. 특히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지배하는 한국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국내에서도 창의성 하나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거나 시장 수요를 유도하며 ‘대박’을 터뜨리는 기업이 늘고 있다. 이들의 성공 노하우는 간단하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딤채’ ‘아침햇살’ 새시장 개척▼

▽제품으로 신시장을 만든다〓자동차 부품 전문 제조업체 만도기계(현 만도공조)의 에어컨 사업부가 1990년대 초 냉장고 시장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차가왔다. 이미 국내 가정의 냉장고 보급률은 90%를 넘어선 지 오래였고 시장도 삼성 LG 등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

하지만 95년 선보인 ‘딤채’는 ‘대박’을 터뜨리며 부도 상황에 몰렸던 만도공조를 살려냈다. 성공의 비결은 냉장고 시장이 아니라 ‘김치냉장고 시장’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만들어낸 데 있었다. 지난해 김치냉장고 시장 규모는 약 1조원. 통 안의 온도차를 1도 이내로 유지하고 내부 알루미늄 통을 이음새 없이 만드는 등 차 에어컨을 만들던 노하우가 그대로 적용됐다.

‘기계회사에서 무슨…’이라는 생각을 ‘기계회사니까 된다’로 바꾼 발상의 전환이 가져온 결과였다.

웅진식품의 곡물음료 ‘아침햇살’도 비슷한 길을 밟았다. 웅진식품은 98년까지 매월 10억원씩, 누적적자 400억원인 회사였다. 게다가 음료시장은 한 제품이 히트를 치면서 판매가 늘어나면 다른 제품의 판매가 줄어드는 대표적인 ‘포화시장’.

따라서 신제품이 나오면 광고와 다양한 마케팅을 동원해 물량 공세를 펴야만 한다. 하지만 웅진의 자금력으로는 롯데 해태 등 선발 업체를 압도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아침식사로 늘 미숫가루를 마시던 조운호 기획실장(현 사장)의 머리 속에는 ‘기호식품’이 아닌 ‘에너지원’ 음료제품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99년 1월 선보인 게 쌀음료 ‘아침햇살’.

이 제품은 시판 9개월 반 만에 ‘음료업계 최단기 1억병 판매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2000년 웅진식품은 매출 2570억에 순이익 250억원을 냈다. 지난해 9월에는 ‘곡물 음료 부문’이라고 명시된 고객 만족도 상을 한국능률협회로부터 받기도 했다. 아침햇살의 성공은 통상 주스 커피 탄산 차류의 4가지로 구분하는 음료 범주에 ‘곡물 음료’라는 새 영역을 추가함으로써 가능했다.

인터넷으로 주고 받는 음악파일인 MP3 음반은 98년까지만 해도 PC에서만 활용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벤처기업인 황정하 전 디지털캐스트 사장의 생각은 달랐다. ‘워크맨’처럼 들고 다니며 들을 수 있다고 본 것. 그래서 만든 게 ‘MP맨’. 이를 시작으로 봇물처럼 시장에 선보인 MP3 플레이어는 세계 각국의 음악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차세대 휴대용 오디오기기로 인정받고 있다.

▽창의적인 마케팅이 시장을 바꾼다〓롯데제과의 자일리톨은 창의력 넘치는 홍보 마케팅이 버림받은 상품을 얼마나 화려하게 부활시킬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97년 ‘자일리톨F’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처음 선보인 이 제품은 ‘달고 맛있으면서도 충치를 예방하는 무설탕 껌’이라는 이미지를 들고 나왔다. 당시 제품 자체는 시장에서 팔릴 만한 조건을 충분히 갖고 있었다. 건강에 대한 관심에다 때마침 ‘프리미엄 제품’ 바람까지 불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한 실패였다.

절치부심한 롯데는 2000년 제품을 다시 시장에 내놓으면서 껌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충치 예방 효과’에 초점을 맞춘 홍보전략을 펼쳤다. “핀란드 사람은 이를 닦고 자기 전에 자일리톨껌을 씹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TV CF를 대대적으로 틀어대고 치과의사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병행한 것. 그 결과 작년 한 해 동안 자일리톨껌은 1009억원 어치가 팔려 제과업계 단일 품목으로 연매출 1000억원을 처음 넘어서는 대박이 됐다.

▼‘자일리톨’‘하이트’ 마케팅의 승리▼

삼성물산의 아파트 브랜드 ‘래미안’ ‘쉐르빌’도 빼놓을 수 없다. 주택 시장에서도 ‘현대아파트’는 90년대 말까지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부동의 1위 브랜드였다. 한국 건설의 대표주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기술력과 매년 2만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공급하면서 쌓아 놓은 결과였다.

하지만 99년 이후 지각변동이 일었다. 주택사업에서 후발업체인 삼성물산은 기존 아파트보다 훨씬 고급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아파트를 아예 빼고 ‘쉐르빌’ ‘래미안’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를 펼쳤다. 그 결과 각종 소비자단체나 경영컨설팅업체가 선정하는 아파트 브랜드인지도 1위를 차지했다.

국내 맥주시장에서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OB맥주’로부터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빼앗은 ‘하이트’도 창의적인 마케팅의 대표적 성공 사례. 93년 5월에 시판된 하이트맥주는 당시 ‘지하 150m에서 끌어올린 천연암반수로 만들었다’며 깨끗함을 앞세웠고, 시판 4개월 만에 100만상자를 팔아치우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보였다. 그리고 96년 OB로부터 1위 자리를 넘겨받은 뒤 지금까지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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