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연금제 도입 논의 급물살

  • 입력 2002년 3월 1일 16시 19분


기업연금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실효성을 잃은 법정퇴직금 제도가 기업의 부담을 늘리고 있어 기업연금제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계기.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지난달 ‘2011 비전과 과제’ 보고서에서 “노동시장에서 채용과 해고가 원활히 이뤄지도록 법정퇴직금 제도를 폐지하고 기업연금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부는 기업연금제 도입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그러나 퇴직금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찮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전경련와 노동계의 의견 대립〓

전경련은 ‘법정퇴직금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이라는 보고서에서 “법정퇴직금제도의 주요 기능인 실업 기간 중 생계 보장과 퇴직 후 소득 보장은 이미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의 도입으로 실효성이 없어졌다”면서 “퇴직금 제도는 기업의 인력운용에 장애가 되고 과도한 부담으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만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이 국민연금(국민연금 보험료율 9% 중 사용자 부담분 4.5%)을 합쳐 근로자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월평균임금의 12.83% 이상을 부담해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재경부도 재계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다. 재경부 당국자는 “사회안전망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일종의 ‘이중과세’”라며 “기업연금제를 도입하면 기업이 인력을 조정할 때 퇴직금 부담이 줄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일 수 있으며 자금이 증권시장에 유입돼 증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재원이 언제 고갈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퇴직금 제도를 폐지했다간 근로자의 생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박동 정책기획국장은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후불 임금인 퇴직금제도를 기업연금으로 전환해서는 안된다”며 “중장기적으로 도입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현행 법정퇴직금 제도에서도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많다”며 “기업연금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퇴직보험에 의무 가입하고 중간 정산제도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기업연금제도란▼

기업연금은 근로자의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기업이 단독 또는 근로자와 함께 갹출한 돈을 투신사나 보험사 등 금융기관에 맡겨 운용해 목돈을 만든 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연금이나 일시불로 지급하는 제도. 미국에서는 일반화돼 있다.

근로자 월평균 임금의 8.33% 이상을 기업이 일률적으로 적립해 퇴직할 때 지급하는 퇴직금제도와 달리 기업이 경영 성과와 능력에 맞춰 연금을 적립하게 된다. 근로자는 정년 등 일정 연령 이후 연금을 받으며 직장이 바뀌면 연금계좌도 바뀐 직장으로 옮겨진다.

정부는 1월부터 기업이 종업원과 함께 기금을 만들어 자기회사 주식을 사들인 뒤 자사주를 종업원에게 나눠주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종업원이 처분할 수 있도록 하는 우리사주신탁제도(ESOP)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퇴직금 제도와의 마찰을 피해 기업연금식으로 운영되는 미국식 대신 성과급으로만 지급하는 영국식을 택했다.

기업연금제도는 주가가 오를 때는 괜찮지만 주가가 떨어지거나 회사가 파산하면 종업원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이 문제. 최근 미국 엔론사 파산 과정에서 ESOP제도로 퇴직급여 계정의 전액을 엔론사 주식에 투자했다가 주가가 폭락, 2만여명의 근로자들이 ‘깡통’을 차는 사태도 벌어지기도 했다.

퇴직보험금과 기업연금 비교
 퇴직보험기업연금
수급자근로자근로자
대출여부담보로 한 대출과 양도금지본인은 중도인출 가능
취급기관은행 보험 투신은행 보험 증권 투신 자산운용
가입기업5명 이상제한없음
운용상품확정금리형, 금리연동형제한없이 선택과 조합 가능
지급형식일시금 또는 연금일시금 또는 연금
회계처리특별계정특별계정(신탁자산)
보험료 처리기업의 비용기업의 비용
근거법근로기준법근로기준법
기업연금은 미국식을 기준으로 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