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대기업 '안테나'엔 다 걸린다?

  • 입력 2002년 1월 3일 17시 58분


대형 건설업체인 A사 H과장은 2년 전 사내 공모를 통해 확정된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를 등록하러 갔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미 2시간 전에 경쟁사인 B건설 직원 명의로 홈페이지 주소가 등록돼 있었던 것. 그는 “사내 공모를 하는 과정에서 비밀이 경쟁사로 새나가 낭패를 본 것 같다”며 “당시 경쟁사의 정보력이 화제가 돼 사내 보안과 정보활동이 크게 강화됐다”고 설명했다.

‘정보는 돈이다.’

하나의 고급 정보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기업들의 정보활동이 급속하게 강화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국가정보원에 견줄 만한 정보력을 갖췄다는 평을 받을 정도. ‘오늘의 삼성’이 있게 된 것은 정보력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동안 정보 수집에 관심을 갖지 않던 다른 대기업도 삼성의 영향으로 최근 정보팀을 크게 보강하고 있는 추세이다.

▽삼성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삼성의 정보력과 관련된 일화는 무수히 많다. 러시아가 영수증 발행 금전등록기를 수입한다는 정보를 입수해 러시아 시장을 석권한 사례나 개각 내용을 당사자보다 먼저 알아내는 것 등은 삼성 정보력의 한 단면이다.

삼성이 이처럼 정보에 강한 것은 전 계열사 임직원이 사실상 ‘정보맨’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 모든 삼성맨은 가치 있는 정보를 그룹 사내 전산망 ‘싱글’에 올리는 일이 일상화돼 있다. 내용에 따라서는 인사고과에 반영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특급정보의 대부분은 구조조정본부 내에 있는 별도의 정보팀이 종합한다. 13, 14명으로 구성된 정보수집팀이 재계, 정치권, 검찰, 경찰 관련 정보를 수집해 보고하면 비서실에 소속된 7명의 분석팀이 정보의 가치를 평가해 필요한 내용은 계열사에 곧바로 알린다.

삼성은 이 밖에도 소그룹 단위의 정보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계열사들도 정보전담 직원을 두고 취득 정보를 교환한다. 전국 5개 권역의 지방정보는 대외협력단이 수집하고 해외정보는 주재원과 연구원을 통해 분석, 본사에 보고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분석팀이 최종 리포트로 만들어 이건희(李健熙) 회장 등 2, 3명에게만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정보력이 주요인물 관리에 철저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한 삼성 출신 인사는 “웬만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은 삼성의 인물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으며 출신지, 출신학교, 주소 등 기본적 사항은 물론 취미, 가족, 친구관계 등 세밀한 것까지 기록돼 있다”고 전했다.

▽다른 대기업도 정보활동 강화 추세〓최근에는 LG의 정보력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서 7명으로 구성된 정보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사장급이 이를 지휘하고 있다. 정보팀은 특히 재계와 경제계에 초점을 맞춰 정보수집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근 국정원 출신 임원을 영입했는데 그 뒤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후문이다. LG는 이 밖에도 계열사별로 1∼3명의 정보전담 직원을 두고 있으며 종합된 정보는 계열사 사장단과 회장단에만 보고된다.

SK도 SKT를 중심으로 정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사업자 선정이 중요한 이슈가 된 지난해 기존 기업정보팀 외에 별도로 국회와 관련부처 담당 정보팀을 신설했으며 전무급이 정보조직 전체를 총괄하고 있다.

그동안 정보의 중요성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현대기아자동차그룹도 최근 정보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정보활동, 첩보전 방불〓정보맨들은 보통 학연과 지연을 총동원해 ‘출입처’ 인사들에게 접근한다. 핵심인사에 접근하기 위해 지인(知人)을 소개받는 방법은 흔하다. 이들은 정보원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며 필요할 경우에는 활동비도 아끼지 않고 쓴다. 정보맨 한사람이 쓰는 활동비는 한 달에 300만∼2000만원까지 제각각이다.

선거철이 되면 정보요원들의 활동영역은 더욱 넓어진다. 한 대기업의 정보요원은 “선거철에는 정·관계와 학계 주요 인사의 동향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며 “대통령선거가 끝나면 기업 관련 주요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작은 정보 하나라도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박정훈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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