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배상판결 파장]법원 "책임경영 계기 마련"

  • 입력 2001년 12월 27일 18시 09분


27일 수원지법의 삼성전자 소액주주 손해배상청구 소송 판결은 기업운영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듯하다.

무엇보다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와 대기업 이사회의 ‘거수기’ 역할에 대한 폭넓은 책임을 물은 데다 동시에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재확인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재계는 이 판결이 향후 경영활동에 미칠 파장을 크게 염려하는 모습이다.

▽판결에 담긴 뜻〓이번 판결은 부실대출 은행이 아닌 일반 기업을 상대로 한 주주대표 소송의 첫 승소판결이자 전현직 이사들이 배상해야 할 금액이 1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는 법원이 회사와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 의사결정을 한 재벌 총수와 경영진에 대한 책임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이 앞으로 상급 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9명의 이사들은 모두 902억원을 공동으로 배상해야 한다. 이는 개인 파산을 몰고 올 수 있는 거액으로 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소신을 가지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수원지법 김창석(金昌錫) 부장판사는 “이사들이 치밀한 검토 없이 불합리한 판단을 해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책임져야 한다” 며 “기업 임원들은 모든 법적 책임이 자신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앞으로 그룹 총수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에서 벗어나 책임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정권에 거액의 비자금을 제공해서 그룹 전체적으로 이익을 봤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경영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다”며 “공정하고 투명한 기업경영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경영에 미칠 영향〓이번 판결에 대해 재계에서는 우려와 기대의 목소리가 함께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번 판결로 앞으로 기업 임원들의 설 자리가 크게 줄어들게 됐다”며 경영활동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그동안 주주나 회사의 이익과는 상관없이 ‘오너 위주’의 경영을 해 온 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뿌리뽑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내심 반기는 시각도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기업들의 ‘투명 경영’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특히 이사회가 오너의 뜻을 대변하는 거수기 역할을 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릴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임원들의 ‘몸 사리기’ 등 경영활동에서의 부정적 파장도 만만찮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비록 다른 회사의 문제이긴 하지만 이번 판결로 대부분의 기업에서 앞으로는 이사들이 책임을 지고 소신껏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재계는 특히 내년 4월부터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의 상장 및 등록기업을 대상으로 증권분야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는 상황을 앞두고 이번 판결이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부담을 느끼고 있다.

<남경현·최영해기자>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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