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부원장의 ‘기행’ 논란

  • 입력 2001년 12월 20일 15시 29분


1400명의 금융감독원 임직원에게 ‘지난 1년간 구내식당을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을 꼽으라’ 고 한다면 아마 강병호(姜柄皓·51·사진) 부원장을 지목할 것이다.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출신인 그는 99년1월 금감원으로 자리를 옮긴뒤 임기 3년내내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구내식당에서 3000원짜리 식사로 점심을 해결했다. 저녁도 퇴근후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날이 대부분.

금감원 부원장은 온갖 금융기관과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자리. 진승현게이트 등 최근의 각종 부패스캔들은 금융감독원의 감사나 조사를 피하기 위해 문제가 있는 기업주들이 힘있는 사람에게 로비를 하다가 발생한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금감원의 부원장은 막강한 자리.

그렇다면 왜 강부원장은 구내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해왔을까.

첫 번째 이유는 민원인과의 은밀한 만남을 아예 차단하기 위해서 였다고 한다. “취임초기 업계사람과 식사를 하는데 봉투를 억지로 건네고 가 그걸 돌려주느라고 혼났습니다. 그뒤부터는 아예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은 업무시간중에 부하직원과 함께 만났습니다.”

힘 있는 사람에게서 청탁전화가 오면 그가 일관되게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우선 “내 전화기는 녹음이 되니 직접 찾아와 달라” 고 말하면 상대방은 틀림없이 “점심이나 저녁을 하자” 고 제의한다. 강부원장은 “선약이 밀려 있어 어렵다” 고 말한뒤 업무시간에 찾아오라고 권유한다. 민원인이 찾아오면 반드시 담당 실무자를 배석시켜 민원인이 은밀한 부탁을 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든다.

“최근 검찰에 구속된 유력인사 대부분이 전화를 했었고 그때 제가 까딱 잘못 처신했다가는 지금 콩밥을 먹고있을 겁니다.”

두 번째는 사회가 요구하는 고위직의 품위유지비가 터무니없이 높다는 것. “취임초기 한정식집에서 접대를 했는데 양주 3병을 가지고 갔는데도 300만원이 나오더군요. 한정식집 주인과 밥값이 비싸다고 싸우고 계산도 안해주고 그냥 나와버렸습니다. 며칠간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계산을 해줬습니다. 국민의 세금을 이렇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접대도 그만 뒀습니다.”

그후 한달에 250만원이 한도인 그의 판공비 신용카드는 아예 0 을 기록하는 달이 많았다. “조건없이 돈을 줄테니 필요하면 이야기하라” 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친구들의 제안을 모두 물리쳤다.

세 번째 이유는 식사시간이 너무 오래걸린다는 것. 점심 저녁때 바깥사람을 만나면 2시간이상이 걸리는데 그만한 값어치를 못한다는 것이 그의 판단. 그는 구내식당에서 10분만에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눈을 붙인뒤 책을 보는게 훨씬 낫다고 본다.

강원장의 능력에 대해서는 모두가 “금융전반에 걸쳐 강원장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 며 인정하지만 그의 이런 처신을 놓고는 갖가지 평가가 따른다. “업계사람과 만나는 공무원은 다 부패공무원이냐” 는 반발도 있고 “그의 처신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지만 그의 은둔적인 생활은 곱씹어볼만한 메시지가 있다” 는 의견도 있다.

그는 과연 기인(奇人)인가, 선비인가.

<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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