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중간관리자 복지부동"…외국인 CEO가 본 한국

  • 입력 2001년 10월 31일 18시 45분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중간 관리자들이다. 이들이 복지부동하고 있는 한 한국은 일류가 될 수 없다.” “한국은 대학입시에만 매달리는 교육제도가 문제다. 특히 대학이 학생들의 재능을 계발해주지 못하고 변화를 수용하는 데도 더디다.” 외국 최고경영자(CEO)들의 눈에 비친 한국 사회의 모습이다. 서울생활 각각 7년과 2년째인 조앤 배런 외국인투자자문회의 위원장과 알 라즈와니 P&G 서울지사장은 2일 서울시 주최로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리는 ‘서울국제경제자문단 창립 총회’에 참석해 국내외 재계 인사들에게 경험담과 나름대로의 충고를 들려줄 계획이다. 다음은 본보가 미리 입수한 두 CEO의 연설문 요지.≫

▽조앤 배런 위원장〓외국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한국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고 정부가 안정적이며 치안 문제도 거의 없다.

사회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고 기술 수준도 높다. 물론 교통과 환경문제가 심각하고 뉴욕 센트럴 파크와 같이 도시민이 쉴 만한 공원이 부족하며 외국인을 위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관광 상품이 없다는 단점도 있다.

하지만 교통이나 환경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이든 정부든 중간 관리(경영)자 층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어느 나라든 중간 관리자가 문제이긴 하지만 서울은 정도가 훨씬 심하다. 그들은 위험 감수를 꺼린다. 흔히 “서두를 것 없다. 가만히 앉아 있거나 그저 숨어있으면 다 해결된다”고들 한다.

정부 관리들은 “한국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번도 시도한 적이 없어서…”라고 발뺌하기 일쑤인데 이는 거의 ‘신드롬’ 수준이다. 일류 국가가 되려면 이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은 중국 필리핀 인도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들과 경쟁관계에 있는데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한국 중간관리자의 이러한 형태는 모험을 무릅쓰고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밖에 무상 의무교육과 취학 전 아동 보호에 대해서도 좀더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알 라즈와니 지사장〓TV를 통해 ‘MASH’ 재방송을 보며 한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공항에서 내린 후 번화한 첨단 도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해외 홍보와 관광 산업에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업 중 83.9%는 한국의 대학들이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내지 못한다고 평가한다고 한다. 교육열은 높지만 급변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아직도 대학입시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대학의 교육내용은 너무 이론에만 치우쳐 있다. 특히 고급 여성 인력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큰 손실이다. 한국 남자들은 비즈니스 세계가 일종의 ‘제로섬’ 게임이어서 여성의 지위가 올라갈수록 남자들의 몫이 그만큼 줄어든다고 착각하고 있다.

한국은 최근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태원에는 구치나 롤렉스시계 모조품이 너무 흔하다. 이 때문에 미국무역대표부(USTR) 지적권보호 감시국 명단에서 빠지질 못한다.

서울의 교통정체는 악명이 높다. 백화점 세일 기간의 인근 도로 정체는 ‘전설’ 수준이다. 특히 물류 시스템이 현대화 돼있지 않아 교통체증을 부채질하고 있다. 도로나 지도에 나오는 영문도 철자가 통일돼 있지 않아 외국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하다.경직된 상업 광고 심의 제도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P&G의 섬유 탈취제인 페브리즈 광고에 담배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담배를 광고하는 게 아니라 담배의 악취를 없애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데 광고에 담배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규정 때문에 잘렸다

<이진영기자>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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