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별세 이모저모]분향소 국화 모자라 비상

  • 입력 2001년 3월 22일 13시 52분


○...22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추모하기 위한 울산 10여개 현대계열사 분향소 설치가 잇따르면서 분향소에 공급되는 국화가 모자라 각 회사관계자들이 국화 구하기에 비상이 걸렸다.

울산 북구 농소 화훼단지에서 나오는 흰 국화는 지난 21일 밤 정 명예회장의 타계소식이 전해지자 현대중공업이 가장 발빠르게 움직여 3만여 송이의 국화를 모두 구입한데 이어 울산지역에서 모자란 국화를 또다시 부산과 양산 등지의 화훼단지까지 섭외, 3만여 송이를 추가로 구입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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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장 영면 순간

현대중공업은 흰 국화 6만송이를 사내 체육관 분향소에 가로 10m, 세로 8m 크기로 만든 벽면에 장식했으며 울산과학대도 중공업과 같이 일찌감치 구입한 국화 1만송이를 동부캠퍼스 제1강의동 벽면에 장식한 대형분향소에 준비했다.

두 계열사가 울산을 비롯, 부산과 양산 등 주변지역에서 생산되는 흰국화 대부분을 구입해버리자 인근 현대 미포조선 등 다른 현대계열사는 국화를 제 때 구입하지 못해 중공업에서 일부 공급받는 등 국화 구하기를 위한 해프닝이 빚어지고 있다.

각 회사는 이미 확보된 국화 이외 조문객들이 분향 때 사용할 국화가 모자랄 것으로 보고 추가주문하기 위해 전국 각지의 화훼단지에 긴급 주문전화를 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에도 분향소 설치

현대는 금강산과 평양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전명예회장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를 각각 설치했다고 22일 발표했다.

금강산의 경우 이날 오전 7시 휴게소인 온정각에 분향소를 설치, 직원들에 이어 관광객들에게도 분향을 허용했으며 상당수 관광객이 분향했다고 현대는 밝혔다.

또 평양에 체육관을 짓고 있는 공사 현장에도 이날밤 늦게 분향소가 설치될 것이라고 현대는 전했다.

애도의 글 잇따라

○...22일 현대중공업 사내 체육관에 마련된 고 정주영 명예회장 분향소를 찾은 이성호(51·해양사업본부)씨는 분향소에 '정 명예회장 영전에 남기는 글'을 올려 주위를 숙연하게 하는 등 정 명예회장의 타계를 추모하는 애도의 글이 잇따랐다.

이씨는 "인간이 어찌 하늘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마는 막상 저희 곁을 떠나 홀연히 영면하시니 인생무상과 함께 자연의 섭리를 따를 수 밖에 없는게 진정 회장님을 잃은 슬픔을 달랠 길 이 없다"고 애통해 했다.

이씨는 이어 "흔히 거목 밑에는 잡초조차 자라기 어렵다고 하지만 거목 밑에서 수많은 인재가 자라났고 회장님을 두령으로 모시고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이 순간 회장님의 은공을 기리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며 "내일을 위해 해야할 일들이 태산같은데 이 모두 미완성의 장으로 남긴 채 떠나 그 원대한 구상과 설계를 다 어찌하렵니까"라고 물었다.

이씨는 "남은 우리들은 평생을 후회 없이 살다 가신 회장님의 유덕을 기리고 받들며 남겨놓으신 이 땅의 일들을 감당해나가겠다"며 "부디 파란만장했던 그 시절의 그 무거운 짐을 벗고 이제 편히 쉬소서"라고 끝맺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의 현중오피스와 통합정보관리시스템(Notes)에도 정 명예회장을 추모하는 글이 계속 올라왔다.

현대중공업 기원단 모임인 연합현우회 회원일동은 "누구보다 강인하시어 천수를 누리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홀연히 가시다니 이 슬픔을 누구하고 나눌꼬"라고 운을 뗀 뒤 "울산 미포만의 모래사장을 뒤집어 엎고 독(dock)을 건설하며 공장을 짓고 한국 초유의 26만t급 유조선을 만드는 과정에서 보여준 회장님 특유의 카리스마와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 뜨거운 열정, 번뜩이는 재치, 유머가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말했다.

회원 일동은 "담담한 마음을 가집시다. 담담한 마음은 당신을 굳세고 바르게 할 것입니다"라는 정 명예회장의 말씀을 영원히 간직하겠다고 약속했다.

현대자동차 소형엔진부 박정기씨는 '꿈이 있는 한 실패는 없다'는 제목으로 "한국경제의 힘은 당신과 같이 위대한 기업가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말했다.

일부 직원은 사이버 공간에도 정 명예회장의 분향소를 설치하자는 의견을 올리는 등 추모의 글은 끊이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도 22일 근로자들의 점심시간에 맞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타계를 애도하는 유인물을 냈다.

유인물은 "정 명예회장의 자동차 부국의 꿈은 약관 25세에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정비업체를 시작으로 자동차와 첫 인연을 맺었고 해방 이듬해 지금의 현대자동차 전신인 현대자동차 공업사를 설립하는 등 불굴의 의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한평생을 사셨다"고 전했다.

또 "만년에도 굽힐 줄 모르는 추진력으로 간절히 소망한 통일된 선진조국이 이제 가까이 다가왔는데 그 감격의 날을 차마 보지 못하고 떠나가신 것은 애통하기 그지 없다"며 "직원은 정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기필코 세계 최고의 자동차회사로 만드는데 한마음 한뜻으로 매진하겠다"고 다짐했다.

日현대, 정 명예회장 조문 접수

재일 현대그룹 계열사는 22일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의 타계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사장단회의를 열어 조문대책을 논의했다.

현대 계열사는 이날 회의에서 도쿄(東京) 중심부인 도라노몬에 위치한 현대자동차 상설 전시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오후 3시부터 조문객을 받기로 했다.

현대자동차는 주말인 오는 24일까지 일반 고객의 구매상담 등 업무를 일시 중단하고 조문객만 받기로 결정했다.

현대자동차 전시장에 분향소가 설치된 이유는 이번 장례 관련업무가 맏상제인 정몽구(鄭夢九) 현대회장의 계열사가 주도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라고 관계자는 귀뜀했다.

현대측은 이날 오전 정 전 명예회장의 영정을 한국본사로부터 인터넷 사진파일을 통해 수신하는 등 조문객을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또 조위금이나 조화는 사절하기로 결정했다.

현대계열사 관계자들은 일본 재계와 폭넓은 교분을 쌓아온 정 전 명예회장의 타계에 아쉬움을 표했지만, 양국 재계의 우호 협력관계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다.

현대자동차의 한 관계자는 "정 전 명예회장이 생전에 일본 재계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였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현대상사에 근무하고 있는 우시로 가즈오 총무과장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어느정도 영향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미 2세 경영인들이 경영을 이끌고 있는 만큼 일본재계와의 관계에는 영향이 적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재계모임인 게이단렌(經團連)의 다카시 이마이 회장은 이날 오후 정 전 명예회장의 타계에 아쉬움을 표하는 조전을 보냈다.

게이단렌측 홍보담당자는 "정 전 명예회장이 지난 77년부터 10년간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만큼 게이단렌 간부들과 교분이 두텁다"며 "게이단렌이 공식적인 발표하지는 않지만, 친분있는 분들이 개별적으로 조전을 보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운동 빈소 주변 차량 북새통

0...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서울 청운동 빈소 주변은 22일 문상객들이 타고 온 차량이 뒤엉켜 하루종일 북새통.

현대측은 혼잡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대로변에 승용차를 세우도록 한 뒤 빈소가 있는 고인의 자택까지 500여m를 수시로 차량을 운행하며 조문객을 실어나르기도.

특히 고인의 유해가 도착한 이날 오전 7시께에는 출근 차량들까지 겹쳐 세검정에서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또 빈소 앞뜰과 프레스 룸이 마련된 주차장은 1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 취재 경쟁을 벌였다.

0... 현대측은 쇄도하는 조화를 주체하지 못해 대로변으로 통하는 골목길 담벼락에 조화 50여개를 세워놓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빈소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전현직 대통령의 조화만 자리를 잡았고 자민련 총재대행, 국가정보원장, 조계종 총무원장 등의 조화는 빈소 밖에 놓였다.

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 등의 조화는 안뜰에, 그리고 다른 30여개의 조화는 뜰 밖에 세워졌다.

포철·현대車 어색한 만남

0..22일 오후 1시55분께 유상부 포항제철 회장이 김재철 무협협회 회장과 함께 빈소를 방문, 조문했다. 유 회장은 문상 직후 이계안 현대자동차 사장과 만나 10분 정도 가벼운 대화를 나눴지만 철강분쟁의 앙금이 남아서인지 만남이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먼저 유 회장이 "오늘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경제관계자들의 모임이 있었다"며 "미 공화당이 정권을 잡은 이후 통상압력을 강화할까 걱정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사장은 이에 대해 "자동차 부문은 미국이 통상문제로 들고 나오는 대표적인 산업"이라며 "경제가 어려워지면 백약이 무효"라고 최근 경제불안에 공감을 표했다.

유 회장은 "자동차와 함께 철강 부문도 통상압력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산업의 하나"라며 "지금과 같이 전반적으로 경제분위기가 침체되면 일본이 10년 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장기침체에 빠져들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유 회장은 빈소를 나가면서 철강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늘 같은 날 철강문제를 언급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한편 정순원 현대·기아차 부사장은 이날 오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유 회장과이 사장의 만남에서 철강분쟁과 관련, 특별히 논의된 것은 없었다고 밝혔다.

0..박세용 인천제철 회장이 이틀 사이에 두 번씩이나 상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회장의 장모인 최산월 여사가 22일 오전 3시30분 여수 둔덕동 성심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한 것.

이같은 사실은 빈소를 방문한 유상부 포항제철 회장이 "박 회장이 장모상을 당한 것으로 안다"며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외부에 알려졌다.

한편 이날 오전까지 빈소를 지키고 있던 박 회장의 모습이 오후 들어 보이지 않자 장모상을 치르기 위해 여수로 내려갔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오후 3시께 다시 청운동 자택에 나타나 "아직 장모상 문상은 하지 못했다"며 "가능하면 저녁에라도 여수에 다녀올 생각"이라고 말했다.

0..히딩크 축구 국가대표 감독 등 대한축구협회 관계자 40여명이 오후 2시30분께 청운동 빈소를 찾아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 겸 축구협회 회장을 위로했다.

히딩크 감독은 다리를 다쳐서인지 양손에 쇠로 만든 허리높이의 목발을 짚고 정장 윗도리에 파란색 체육복 바지 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건강상태는 좋아보였다.

히딩크 감독은 문상 직후 정원에 마련된 대형텐트에서 조중연 축구협회 전무, 허정무 전 국가대표팀 감독, 가수 김흥국 씨 등 함께온 축구협회 관계자들과 20여분간 담소를 나누다 자리를 떴다.

0..정몽준 고문이 이날 문상차 찾아온 한 전직언론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눈물을 훔쳤다. 형제들 가운데 공개적으로 눈물을 보인 것은 정 고문이 처음이다.

정 전명예회장이 아산재단을 설립할 때 언론 분야 고문으로 활동했다는 이 전직언론인이 정 전명예회장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쏟자 정 고문 역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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