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심'의 LG "내년은 역전극의 해"

  • 입력 2000년 12월 25일 18시 36분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요즘 점심식사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식당가에서 주로 임원들과 함께 한다. 연말이어서 외부행사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이런저런 악재가 겹치자 그룹 내부를 챙기는 데 주력한다.

‘식사 미팅’에서는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 탈락에 따라 내년 경영전략을 어떤 방향으로 짜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그룹 수뇌부는 올해 흑자를 낸 계열사 직원들에게 내년 1월중 성과급을 주기로 결정했다. LG석유화학 등 우량기업을 내년에 거래소에 상장하거나 코스닥에 등록할 방침도 세웠다.

구조조정본부 정상국 상무는 “좋지 않은 일이 겹쳐 침체된 그룹 분위기를 바꿔 내년에는 더욱 심기일전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LG “심기일전으로 난국 타개”〓LG측은 올해 그룹 경영이 위축된 것으로 보는 세간의 시각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 IMT―2000과 위성방송 등 굵직한 양대 이벤트에서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한해 장사는 평년작을 웃도는 수준이라는 것.

LG의 올해 경상이익은 3조3000억원으로 작년(1조7000억원, 특별이익 제외)보다 두배 가량 늘었다. LG전자와 화학이 각각 7100억원과 5000억원대의 흑자를 낸 것을 비롯해 건설 전선 등이 1000억원 이상의 이익을 냈다.

현재 상여금 지급이 확실시되는 계열사는 전자 화학 건설 전선 상사 캐피탈 필립스LCD 등 10개를 넘을 전망. LG전자는 네덜란드 필립스사로부터 상환우선주 대금으로 5440억원을 받은 데 이어 26일 자사주 매각과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 등을 통해 2464억원을 확보했다. LG는 이 돈으로 차입금을 갚아 부채 비율을 연말까지 200% 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석유화학 외에 실트론 이노텍 캐피탈 등 4개 알짜회사의 기업공개 일정을 확정한 것도 국면전환 노력의 일환.

▽“뚝심으로 역전극 노린다”〓LG는 당초 IMT―2000 비동기식 사업자 선정을 전제로 그룹의 투자재원을 정보통신에 집중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 전면수정이 불가피한 상태.

반면 단기적으로는 자금흐름에 여유를 갖게 된 측면도 있다. LG는 디지털가전과 통신장비의 연구개발(R&D)에 당분간 투자여력을 집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LG의 속내는 심사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정부를 압박해 시간을 끌면서 △비동기식으로 참여할 길을 트거나 △이것이 어렵다면 장기적으로 한국통신 민영화 때 인수자로 나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LG가 “기술력에서 최하위 평가를 받는 바람에 국제시장에서 치명타를 입게 됐다”며 정부측의 해명을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도 이같은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

▽재계 시각〓LG 탈락을 가장 애석해한 쪽은 전경련. 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LG가 선정되면 반도체 빅딜 때의 앙금을 털고 주요그룹 총수들이 화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해 축하모임까지 준비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반면 삼성측은 LG의 ‘한통인수 추진설’이 나오자 “그런 상황이 생기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민감하게 반응. LG가 특유의 뚝심을 바탕으로 뒤집기에 성공할지는 새해 재계의 흥미로운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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