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3년 한국경제 어디로]구조조정 늦어져 부실 눈덩이

  • 입력 2000년 11월 20일 18시 40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3년을 맞는 한국 경제가 여전히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외형상 지표는 좋아졌지만 속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드문드문 ‘지뢰’가 드러난다. 실물지표는 좋아졌다지만 경제 체질은 여전히 허약하다. 외풍(外風)이 조금만 불어도 뿌리까지 흔들리는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는 게 한국 경제의 현주소라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지표는 좋아졌지만…▼

▽지표는 ‘양호’, 속내는 ‘불안’〓97년 11월 IMF 긴급 차관을 요청하면서 시작된 IMF 관리체제는 형식상으론 막을 내렸다. 하지만 우리 경제 곳곳에 그 상흔들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거시지표로 본 성적표는 이미 IMF 관리체제를 벗어났다고 할 만하다. 경제성장률은 98년 ―6.7%에서 올 상반기에 11.1%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경상수지는 IMF 직후인 97년 81억달러 적자에서 올 들어선 9월까지 77억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외환보유액도 97년 88억7000만달러에서 최근에는 934억달러까지 늘었다.

지표 호전에도 불구하고 정작 우리 경제의 양대축인 금융과 산업 부문의 실상을 뜯어보면 곳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산업자금의 젖줄인 금융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 채권시장이 얼어붙었고 주가는 올들어 50%나 떨어져 반토막이 됐다. 기업자금 조달 창구로서 증시와 채권시장이 기능을 거의 잃었다는 평가. 시장 메커니즘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구조조정에 쫓긴 투신사는 기관투자가 역할을 못하고 있다. 또 산업자금을 대주는 은행들은 ‘제 앞가림하느라’ 팔짱을 끼고 있다.

▽벤처 거품의 후유증〓산업부문도 외화내빈(外華內貧) 성적표에 그친다. 산업생산과 설비투자는 99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98년 ―6.1%였던 생산증가율은 올 2분기에는 9.5%로 IMF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또 설비 투자도 98년 ―38.8%에서 지금은 41.3% 증가세로 확연히 돌아섰다.

하지만 환란이후 산업 정책의 중심을 전통 기업인 굴뚝산업에서 정보통신(IT) 등 벤처 위주로 급속히 바꾸는 과정에서 곳곳에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코스닥시장 활성화를 통한 벤처 지원 정책이 실패를 보이고 있다는 점. 벤처 거품이 사라지고 코스닥시장이 폭락한 바람에 중산층의 재산 손실이 커졌다.

▼구조조정 지지부진▼

▽구조조정 제대로 진행되나〓IMF 환란이후 정부가 전력투구한 구조조정 작업도 지금은 소강 상태로 접어들었다. 개혁 ‘피로증후군’이 곳곳에서 노출되면서 부실을 더 키우고 있는 것. 당초 예상한 109조원의 공적자금보다 40조원 이상 더 들어가고 정치권마저 구조조정 발목을 잡고 있어 자칫하다가는 금융 부실이 더욱 커질 판이다.

정부는 그동안 전체 금융기관의 4분의1을 차지하는 485개 금융회사의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기업 부실이 금융 부실로 옮아가는 악순환 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있다. 막대한 국민 돈을 쏟아붓고도 책임을 따지는 작업이 소홀했고 손실분담 원칙도 오락가락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기업개혁도 부실업체 처리가 늦어지면서 해당 기업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은 사실상 금융부실을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대기업 부채비율 200% 기준 때문에 증권시장은 혹독한 유상증자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구조조정 작업이 늦어지면서 노동계의 반발과 개혁도전도 새로운 복병이다. 노조들은 경제위기 책임을 노동계로 떠넘긴다며 정부주도의 개혁에 저항하고 있다.

공기업민영화 지연 등 공공부문 개혁은 아직 칼자루도 꺼내지 못하고 봉합돼 있는 상태.

▽위기방지는 구조조정뿐〓경제위기가 다시 불거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는 것만이 위기를 막는 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평가.

이원기 리젠트자산운용 사장은 “우리 경제는 외부여건이 조금만 나빠져도 추위를 타는 허약한 체질”이라며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도 느슨해진 개혁의지를 다잡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유용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 위기증후가 진짜 위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과감한 수술(개혁)과 함께 수술을 견뎌낼 영양제(단기보완책)를 함께 투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영해기자>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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