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재경부 "국민부담 안늘어" 궤변

  • 입력 2000년 9월 5일 18시 51분


재정경제부는 4일 내년도 정부의 세제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주장을 폈다. 에너지세율 대폭인상 등으로 2003년까지 세수증가에서 감소분을 뺀 순(純)세수가 5조1000억원 늘어나는데도 국민의 세금부담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재경부 공무원들은 5일자 조간신문 초판이 나온 뒤 4일 밤 늦게까지 재경부 출입기자 등에게 “늘어나는 세수는 중산층 및 서민층 지원이나 운수업체 보조금, 교육재정확충 등을 통해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므로 ‘세금부담이 늘어난다’는 표현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고도경제성장이 지속될 경우 세수증가가 실질적인 세금부담 확대로 이어지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가능하다. 그러나 향후 경제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세수확대가 전반적인 납세부담 확대가 아니라는 논리는 궤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에너지세율 인상 등에 따른 여론의 반발을 의식해 내놓은 ‘당근’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이 있다. 공적연금의 소득공제 실시와 개인연금 공제한도 확대도 그동안 과세대상이 아니었던 연금소득에 새로 세금이 부과되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에게 돌아갈 득실은 더 따져봐야 한다. 근로소득세 경감효과와 에너지세율 인상의 대차대조표도 분명하지 않다. 결국 국민 부담은 얼버무리고 혜택은 강조하는 ‘꼼수’를 썼다고 볼 수도 있다.

다른 이야기지만 기획예산처의 행태 하나도 짚고 넘어가자. 기획예산처는 내년도 예산안을 관례를 깨고 출입기자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다가 4일 민주당 쪽에서 당정협의를 위해 넘어온 자료를 공개하자 이날 저녁 부랴부랴 언론에 배포했다. 예산이 갖는 중요성과 기자들이 자료의 정밀분석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그런 식의 대(對)언론 행태도 ‘꼼수’라는 지적을 받지 않을까.

<권순활기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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