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경제팀-5단체장 회동]"할 말은 하고 들을 말은 듣고"

  • 입력 2000년 8월 21일 18시 48분


“선진국에서는 경제장관들이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경제장관들의 엇갈리는 발언은 시장에 혼란을 주니 공개발언을 자제해주십시오.”(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회장)

“좋은 말씀입니다. 앞으로 참고하겠습니다.”(진념 재정경제부 장관)

21일 신임 경제팀과 경제 5단체장의 첫 오찬회동에서 일부 공개된 대화록을 보면 정부와 재계의 관계가 변화할 조짐을 읽을 수 있다. 김각중 전경련 회장은 회동이 끝난 뒤 “만족스럽다. 양측이 완전히 합의한 사항은 없지만 무엇보다 정부가 재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는 점이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양자의 관계가 유화국면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정도.

재계는 97년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정부와 재계의 관계를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의 관계에 가깝다고 불만을 표시해왔다. 재계는 ‘개혁’을 내세우며 서슬 퍼렇게 닦달하는 정부에 이견을 제시하기 힘들었고 행여 딴 소리를 하면 ‘반개혁세력’이라는 소리를 듣곤 해서 아예 입을 닫고 살다시피 했다.

21일 간담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부가 재계의 건의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줄 것을 주문했다는 점이다. 정부로서는 재계가 듣기 싫은 소리를 ‘쇠귀에 경 읽듯’ 반복해온 관행에서 벗어나 기업을 경영하면서 느끼는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

규제개혁 준조세철폐 등에 대해 재계의 개선안을 다음달말 제출토록 한 것이 대표적인 예. 정부는 부품산업 육성 방안도 산업현장에서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하면 정책수립에 참고하기로 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간담회의 의미를 “진념 장관은 평소 ‘시장의 힘을 키워 개혁의 동력으로 삼겠다’고 말해왔다”며 “재계도 요구할 것이 있으면 공식적인 통로를 통해 요구하고 정부도 이를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재계의 ‘쓴 소리’를 겸허히 듣겠다는 것.

그러나 재경부는 신임 경제팀이 기업구조개선 및 재벌개혁의 후퇴로 해석되는 것은 극도로 경계하는 분위기다.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변화에도 불구하고 재계가 계속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 정부로서도 유화기조를 유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재경부의 분위기.

결국 이날 모임은 진장관의 현대사태 처리에서 보듯 ‘온건하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스타일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정재계의 이날 만남은 경제팀 출범 이후 상견례인 동시에 상대방 진의를 떠보는 탐색전의 성격이 강하다”며 “공정위의 재벌조사 기업구조개선 작업 등 양측이 경색된 관계로 다시 돌아갈 변수는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박원재·이병기기자>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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