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自救계획 재실사…어음 1466억 자체 결제

  • 입력 2000년 7월 30일 19시 03분


현대건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은 30일 현대건설이 7월 위기를 일단 넘겼다고 보고 현대측이 낸 1, 2차 자구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31일부터 정밀 재실사하기로 했다.

이연수(李沿洙)부행장은 “실사 결과 ‘부채 1조원 감축’ 목표 달성에 미흡할 경우 (오너일가 사재 출연 등을 포함하는) 추가 계획을 제출토록 현대측에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자구 계획 전면 재실사〓자구 계획 재실사는 올 하반기 현대 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12개 은행장은 26일 “현대측 자구 계획이 현실성이 크다”고 밝혔지만 자구 계획은 전적으로 현대가 제출한 자료로 작성됐을 뿐이다. 따라서 부동산 평가액, 주식 매각 예상액이 그대로 실현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외환은행의 시각이다. 실제로 현대는 ‘시장 침체’를 이유로 “현대중공업 등 우량 계열사 주식이 제값을 받을 수 있는 10월 이후에야 팔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부채는 5조4000억원 수준. 외환은행측은 “백 번 양보해도 부채 규모를 4조5000억원까지는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1조3000억원대 자산 매각을 담은 자구 계획이 ‘비현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올 경우 제2금융권이 자금 회수에 들어가 현대건설의 ‘월말 결제자금 구하기’ 소동은 반복될 수 있다.

이부행장은 재실사와 관련해 “빠른 시일내 실사를 마쳐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오너일가의 사재 출연에 대해서는 “은행이 사재 출연을 직접 요구하기는 힘들지만 현대가 알아서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현대의 자구 능력 수준은〓현대그룹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실무 책임자는 29일 오후 “제1금융권이 연장 약속만 지킨다면 현대 자금난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현대건설은 29일 만기가 돌아온 물품어음 1466억원을 자체 조달한 자금으로 막아 ‘7월 고비’를 넘겼다.

현대건설은 이날 농협 기업은행 등 27일 밤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한 은행의 도움 없이 자체자금 950억원과 현대상사가 발행한 기업어음(CP) 500억원 등으로 1466억원을 하청업체에 지불했다. 이날 만기가 돌아온 한빛은행의 CP 500억원은 26일 12개 은행장 합의에 따라 연장됐다.시장에서는 ‘엄살’을 마다 않던 현대건설이 28일 하루만에 ‘자체 자금’을 1000억원 가까이 마련한데 주목하고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현대가 이미 28일 현대상사가 발행한 CP 500억원을 사실상 현대증권의 지원하에 넘겨받았지만 통보하지 않고 농협과 550억원 지원 협상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현대는 또 950억원대의 자금을 마련하면서 “31일 받을 국내외 건설공사 대금을 이틀 앞당겨 받았다”고 설명했지만 어떤 경로로 자금을 확보했는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한 시중은행 부장은 “현대가 ‘긴급 자금 요청’을 해 놓고도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앞으로 자금 요청을 받아들일 은행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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