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항공유 조달과정]정유5社 값올리려 高價입찰

  • 입력 2000년 7월 6일 19시 56분


올해 국방부의 항공유 조달과정은 ‘작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국방부가 입찰예정가를 국내시장가격이 아니라 이보다 훨씬 낮은 싱가포르 국제석유시장가격(MOPS) 기준으로 바꿔 입찰을 했음에도 국내 정유5사가 계속 고가로 투찰, 9차례나 유찰되는 등 ‘가격 저항’이 대단했던 것.

99년 단 한차례, 98년 세차례의 입찰로 낙찰된 경우에 비하면 양측의 공방이 엄청났던 셈이다. 국방부는 그 과정에서 전시(戰時) 등 불가피한 경우에만 사용토록 규정된 비축유를 사용해가며 버티는 바람에 ‘입찰 전쟁’이 자칫 국가안보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으로까지 번질 뻔했다.

▽정유사들의 ‘가격저항’〓국방부는 올해 항공유 입찰예정가 산정기준을 바꾸었기 때문에 정유업계의 저항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 예정보다 2개월 가량 빠른 2월 일찌감치 입찰을 시작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1차 입찰은 정유5사(인천정유 포함)가 국방부 예정가(ℓ당 253.7원)보다 평균 68.62원 높은 322.32원을 제시해 유찰되고 말았다.

정유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국방부 입찰시 국내시장가격에서 ‘몇%’를 할인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MOPS를 기준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예정가의 기준을 두고 벌어진 양측의 입장차는 계속 평행선이었다. 국방부는 4월초 4차 입찰마저 유찰되자 기존 예정가에다 싱가포르에서 국내까지의 운송비를 포함하는 조건으로 협상을 시도했으나 정유사들은 미동도 않았다.

이같은 상황은 5월12일 8차 입찰 때까지 지속됐다. 국방부는 급기야 그동안 입찰 참여자격이 없던 수입판매업자들에게까지 참여자격을 부여했으나 9차 입찰 역시 유찰됐다. 수입업자들은 준비 부족으로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

이같은 밀고 당기기는 국방부가 예정했던 마감시한보다 한달이나 늦은 5월31일 10차 입찰에서야 끝이 났다. MOPS에 ‘부대비용+운송비(20원 정도)’를 붙여주는 선에서 정리가 된 것.

▽국방부의 ‘배수진’〓조달본부는 올 입찰이 순조롭지 않을 것에 대비, 사전에 여러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최악의 경우 비축유를 사용하고, 이마저 바닥나면 주한미군의 협조를 얻겠다는 것.

조달본부 관계자는 “‘국방부가 기름이 바닥날 때까지 버티겠느냐’는 것이 정유사들의 생각이기 때문에 최악의 경우까지 감안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5월 어느 시점 일반 재고물량이 바닥을 보이고, 공군에서 “작전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걱정이 흘러나오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급기야 조달본부장은 국방부장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장관 승인 하에 비축유를 쓰기로 결정했던 것.

▽논란〓정유사들은 비축유까지 사용하는 비상상황이 초래된 데 대해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었다고 주장한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군이 비축유까지 사용해야 할 상황이면 언제든 물량을 외상으로 빌려주겠다고 실무진에 제의했었다”며 “정유사들이 고의로 입찰을 지연시켰다는 주장은 우리를 애국심도 없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가려는 속셈”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조달본부 관계자는 “관련법상 외상으로 물량을 받을 수 없으며, 그럴 경우 책임을 질 사람이 없다”며 “정유사들로부터 그같은 제의를 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다.

국방부와 정유업계 사이의 이같은 논란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반드시 진상이 규명돼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자료공개 조희욱의원 "안보까지 위협…석유마피아 방불"▼

‘국방부의 비축유 사용’ 사실을 확인 공개한 자민련 조희욱(曺喜旭)의원은 “덤핑유로 석유 유통질서를 훼손하더니 이제는 담합으로 국가안보에까지 치명적 위협을 가한 정유사들의 행태는 ‘석유 마피아’를 방불케 한다”고 주장했다.

조의원은 또 “국방부가 98,99년 정유사에 초과지급한 1200여억원의 ‘혈세’는 반드시 환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의원은 “동아일보의 일련의 정유사 비리관련 보도로 정유사들의 횡포에 제동을 걸 단서는 마련됐으나 이와 함께 근본적 해결책이 마련돼야 한다”며 “그러나 석유제품의 원가산정 능력도 갖추지 못한 산업자원부가 정유사들을 견제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조의원은 △수요자 위주의 현물시장 개설 △유종별 원가산정방식 투명화 등의 개선책을 임시국회 과정 등에서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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